소설 탬버린 완독, 소설 스크류바 읽는 중 (둘 다 꿀잼)
얼마전 『탬버린』과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구매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먼저 읽으려고 손에 들었는데 아무래도 진도가 나가지 않고, 이런 류의 이야기에는 어쩐지 흥미가 없어서인지 읽다 포기했다. 언젠가 다시 읽겠지만. 무튼, 그렇게『탬버린』 어제 저녁에 집었고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오늘 아침에 끝까지 다 마저 읽었다. 단편집인데 단편 하나하나가 모두 좋았다.
소설속 내용은 지방 출신의 주인공들이 상경해서 겪는 일들, 상경했던 이들이 다시 귀향해서 겪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작가가 밀양 출신이라서 그러한지(성장해서 서울로 유학까지 했는지는 모르겠다) 꽤나 생생하다. 지방에서 나고자라 자발적 타의적으로 서울에 내쳐진 주인공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살길을 도모하지만 쉽지가 않다. 삶에 있어 이유 모를 자격지심을 느끼고,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곤 수치스러워 감추려 하고, 감추려고 하지만 또 감춰지지 않아 당혹스러워한다. 또한, 어떻게든 지긋지긋했던 고향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그곳에 두고온 가족, 친구, 기억 등등의 이유로 완전히 벗어나지 못 하거나 그 한계를 받아들이고 다시 벗어나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지만 그 의지 자체가 어쩐지 스스로도 허탈하다. 절대적 가난이나 상대적 가난에 놓여진 주인공들도 나오는데, 주인공들이 자리한 위치가 어디쯤이든 언젠가 나도(한번쯤은 다 있지 않을까 싶은데) 겪었던 마음이고 감정이고, 언젠가 듣거나 했던 말들인 것 같아 엄청나게 몰입하며 읽었다.
소설속 주인공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내 주변도 마찬가지로, 부단히 '더 나은 삶'이나(혹은 그리 불리는 삶) '행복'(혹은 그리 불리는 현상이나 마음)을 좇아 어디론가 향하지만 충족이 되지 않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스스로 충족되지 않는 것들이 늘어가는데, 동시에 책임져야 할 것들도 늘어간다. 매우 혼란스러운데 그나마 있을 작은 기회마저 놓칠까 혼란스러움을 비롯한 숱한 의문과 감정은 풀지 못한 채 마음 한쪽에 묻어두고 아무일도 없던 척 해본다. (그런데 최근에 이 과정자체가 그 숱한 의문과 감정을 풀어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친구들과 '뭐든 타고 난 게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신세한탄하듯 주고받은 적이 있는데, 누군가 내게 "그런데 나는 대학 때 네가 아빠 신용카드를 들고 학교 다니는 거 보고 충격 받았어. 너는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용돈도 받으면서 거기에 신용카드까지 들고 다니더라고. 되게 부러웠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타고날 수 있는 많은 것중에 경제적인 부분을 이야기한 것 같은데, 우리집이 부자가 아닌 건 아는 친구인지라 비난조는 아니고 그냥 그것이 충격이었다고 이야기하며 웃었다. 『탬버린』속 아래글은 그날의 일을 오랜만에 떠올리게 했다.
'반장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송과 비교한다면, 내 인생은 너무 쉬웠고 잘 풀린 경우였다.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스무살의 송이 내게 건넸던 말이 다시 귓전을 울렸다. 나는 운이 좋아서 하는 데까지 해볼 수 있었고, 아마 송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송의 삶을 둘러싼 어쩔 수 없음을 나는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는 삶의 무용에 자주 빠져들었던 나는 사실 최선을 다해도 상황은 매번 쉽지 않다는 것을, 아무리 노력해도 100점을 받기가 어렵다는 삶의 잔인함을 뼈저리게 경험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지내왔다. 그렇다 해도 내 인생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운이 좋았고 그나마 쉽게 풀린 축에 속해봤자, 고작 지금의 내가 되었을 뿐이다. 나 역시 하루하루 버텨내기에 급급했다. 그럼에도 버텨낼 자리 하나도 허락되지 않는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보잘것없는 나조차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탬버린 』156~157p
저 글에 비추어 나를 생각하면 비교적 운이 좋았고 그나마 쉽게 풀린 축에 속하지만, 어쨌든 그러한 나 역시 하루하루 버텨내기에 급급한 사람이었고, 그 급급함은 20대보다 어쩐지 30대에 더 심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집에 실린 또다른 단편 『가져도 되는』의 조명아처럼 나는 '내 기분을 돌보며 사는 삶'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지니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정도의 여유는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여유가 온전히 나의 것인지, 지금 가져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을만큼 예전보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탬버린 』을 읽으며 나는 나를 시소에 태워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