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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간 혼자 오사카 여행(1) 무계획

[나의 여행]

by W하루

마음의 환기가 간절히 필요했다. 안 되겠다, 바람이라도 쐬고 와야겠다. 멀리 갈 용기는 없고, 같이 여행 갈 사람도 없고, 국내 여행은 지겹고, 결국 나의 선택은 오사카.


오사카의 더위는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다. 본격적인 여름이 되기 전에 후다닥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아 급하게 비행기 표를 끊었다. 2년 만의 출국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해외를 혼자 가는 것이라 그런 것일까? 고작 옆 나라 가는데 나는 잔뜩 쫄아 있었다. 심지어 일본은 5번째 가는 건데..


오사카 내에서 딱히 가고 싶었던 곳도 없었고, 그저 잠시 숨 좀 돌리기 위한 도피처였기 때문에 극 J임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숙소 외에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김포공항만 지겹게 오가다 오랜만의 인천공항은 조금 설렜다. 내가 이용하는 공항이 바뀌었다는 사실만 설레었을 뿐 여전히 여행 자체는 설레지 않았다.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안에서도 ‘오사카 가서 무엇을 할까’ 보다 내려서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숙소로 이동할까의 고민뿐이었다.


평소 식사 약속을 잡더라고 1차로 갈 식당은 물론이고 2차로 갈 카페나 이자카야 등 무조건 계획을 세우고 차선책까지 세우는 나인데, 이렇게까지 무계획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오사카에 내려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했고, 이제는 점심을 먹어야 한다. 일본이 처음도 아닌데 대체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대충 눈에 보이는 라멘집에 들어갔다. 얼마 전에 새로 한 머리스타일 때문인 것일까? 나에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본어 메뉴판을 주셔서 내가 영어 메뉴판을 요구했더니 눈이 커질 정도로 놀라신다. (저 한국 사람입니다.) 라멘은 그냥저냥 맛있었고, 생맥주가 정말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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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 왔으니 글리코상을 보러 이동한다. “아, 인스타에서 지겹도록 본 뷰가 이거구나. 사람 진짜 많네.” 이 생각이 다였다. 글리코상과 나를 함께 찍어줄 동행인 따위는 없다. 모르는 사람한테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글리코상과 그 주변 뷰만 연신 찰칵찰칵 찍는다. 어쨌든 인스타 스토리에 올려야 하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많은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 조용한 동네를 검색해서 이동했다. 나카자키초의 카페거리. 외관이 아주 멋진 킷사텐 안으로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유명한 곳이었다. 내부 분위기도 합격! 카페오레와 치즈케이크를 주문했다. 커피와 디저트가 상향평준화 된 한국에 살다 보니 이제 일본 커피는 뭔가 상대적으로 맛이 없게 느껴졌다. 킷사텐 특유의 분위기 덕에 맛있다고 느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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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샵도 조금 둘러보고 나니 슬슬 저녁 시간이 되어갔다. 또 어디를 갈지 모르겠다. 일본어를 전혀 읽을 줄 몰라서 선뜻 어딘가에 들어가기도 두렵다. 역시나 인스타를 검색해 본다. 꼭 가보라고 하는 장어 덮밥집이 눈에 띄어 지도를 보고 이동한다.


일본까지 와서, 그것도 혼자 와서 웨이팅은 하고 싶지 않았으나 이왕 찾아왔으니 긴 줄에 나도 합류해 본다. 한국에서 감기가 완벽하게 낫지 않은 채 와서 그런가, 점점 코가 막혀온다.


긴 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착석을 하고 장어덮밥과 하이볼을 주문했다. 일본 하이볼은 무조건 맛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사실 장어덮밥보다 좀 더 기대했다. 웬걸.... 물론 장어덮밥 전문점이라 그렇겠지만 하이볼이 이렇게까지 맛없는 술이었나 싶었다.


장어덮밥이 나왔다. 보자마자 든 생각은 아.. 이거 그냥 진짜 인스타용이다. 한입 먹자마자 내 예상은 정확했다. 딱 인스타에 사진 올리기 좋은 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밥 양과 느끼한 장어와 계란의 조합은 쥐 파먹은 정도로만 깨작깨작 먹다 수저를 내려놓게 만들었다. (참고로 나는 장어덮밥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소식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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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맛이 없었다기보다, 감기 기운이 점점 더 심해져서 입맛을 잃어가는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히 맛있을 수 있겠지만, 맛 평가는 뭐 주관적인 거니까!

한국이나 일본이나 인스타 맛집은 거르자는 깨달음을 얻은 한 끼였다. (물론 인스타 맛집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배는 부르지만 일본 여행에서 하루 마무리의 국룰인 편의점에 들른다. 먹고 싶은 건 전혀 없었지만 괜히 꾸역꾸역 뭔가를 사본다. 역시나 일본 편의점 푸딩과 롤케이크는 실패할 수가 없다. 오늘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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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사카에서의 하루가 마무리된다. 보통 마음이 힘들 때 여행을 가는 이유는 여행 가서 리프레시하고 힘을 얻기 위함이 아닐까?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새삼 느낀 점은 마음이 좋지 않을 때 여행을 가면 뭘 해도 마음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생 최초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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