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나의 여행]
오사카 시내로 돌아왔다.
비가 와서 그런지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라면’은 좋아하지만, ‘라멘’은 좋아하지 않는 내가 라멘집을 찾아갔다. 웨이팅 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애매한 시간에 방문했고 운 좋게 금방 들어갈 수 있었다.
3일 동안 생맥주 말고는 극찬한 음식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정말 맛있다고 느낀 음식이었다.
그러나 역시 라멘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느낀 게, 먹다 보니 뭔가 알 수 없게 물려서 결국에는 조금 남기고 나왔다. (나는 결코 소식가가 아니다.)
밥을 먹고 나니 또 할 일이 없다. 검색도 귀찮고 지인들에게 갈만한 곳이 없는지 물어본다. 백수라 쇼핑도 마음 편히 할 수 없고, 소소하게 소품샵들 둘러보며 시간을 때운다. 다행히도 막 사고 싶은 것은 없었다.
아이쇼핑도 금세 흥미를 잃었고, 또 어디를 갈지 막막하다.
카페나 가볼까.. 그래도 지인들 사이에서는 카페나 식당 찾는 검색 능력을 꽤 인정받는 나인데, 왜 오사카 와서는 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까. 열정의 문제인 것일까..
결국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지 못하고 비 오는 오사카 거리를 방황하다, 후배에게 추천받은 카레집을 찾아간다. 배는 별로 고프지 않았지만 춥고 저녁은 먹어야겠고, 제일 무난해 보이는 카레를 시킨다.
급식도 이것보다는 정성스럽게 줄 것 같은 당황스러운 비주얼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맛있었다. 후배가 추천해 준 이유가 있구나!
교토를 가려면 오사카를 와야겠지만, 시내 중심지는 앞으로 굳이 찾아 올 일이 없을 것 같아 글리코상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간다.
밤에 보는 글리코상은 또 다른 느낌이었지만, 뭐 대단한 것은 없었다. 사람들만 더 많아졌다고 느꼈을 뿐.
숙소로 돌아왔다. 또 할 일이 없다. 혼자 여행을 꽤 많이 다니는 나는, 혼자 여행 시 스스로 세운 철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밤늦게 돌아다니지 않기 그리고 술 '취하지' 않기. (마시지 않기 아님)
저녁 9시가 다 되어가서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 그래도 나도 어른인데(?) 내가 생각하는 안전한 범위 내에서 술 한잔쯤은 괜찮다고 생각하여 숙소 근처에서 맥주나 한 잔 하기로 한다.
나의 검색 능력은 한국 가서 발휘하기로 하고, 호텔 가까운 곳에서 발품을 팔아보았다.
일본어를 전혀 읽을 줄 모르지만 느낌상 괜찮아 보이는 이자카야에 들어갔고 성공적이었다. 맥주도 꼬치도 아는 그 맛인데 이렇게까지 맛있을 수가 있나 싶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분명 하이볼도 맛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시켰고 역시나 맛있었다. 술을 잘 마시는 스타일은 아니라 점점 취기가 올라온다.
내 철칙에 의하면 여기서 멈췄어야 하는데, 기분도 그냥 그렇고 뭔가 딱 한잔만 더하고 싶었다. 안전한 귀가를 위해 호텔 바로 코앞에 위치한 가게로 들어갔다.
시끌벅적한 게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일본 생맥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니 아쉬운 대로 맥주를 주문한다.
역시 뭐든 아쉬울 때 멈췄어야 했다. 마지막 가게는 맥주 맛도 별로였고 흡연도 가능했던 곳이라 비흡연자인 나에게는 너무 괴로웠다. 시킨 것만 대충 빨리 먹고 나와서 호텔로 들어왔다.
이렇게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오사카의 마지막 날 밤을 마무리했다.
다음날 아침, 비행기 타기 전 오전에 시간이 좀 있어 마지막으로 카페를 가려고 한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라고 열정적으로 검색하고 찾아갔는데 내가 검색한 두 곳 모두 열지 않았다. 분명 영업 중으로 나왔는데. 아, 오사카는 끝까지 나랑 안 맞는 것일까.
비가 그쳐서 그런지 날은 무척이나 더웠고, 더위를 피해 인스타에서 얼핏 봤던 카페로 들어갔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 정도는 한국에도 엄청 많지 않나? 는 느낌의 카페라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마지막 날이라 현지 감성을 느끼면서 떠나고 싶었는데.
시간이 많지 않아 커피를 급하게 마시고 나와서 돈키호테에 들른다. 원래 물욕이 없는 나는 갖고 싶은 거라곤 과자 쪼가리 몇 개뿐이었고, 지인들 선물만 캐리어가 빵빵해질 정도로 한가득 챙긴다.
이제 공항 갈 시간은 다가오고, 오사카에서 진짜 마지막 한 끼이다. 그러고 보니 초밥을 못 먹었네? 근처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맥주에 초밥을 시킨다. 지극히 평범한 맛이었지만 날씨가 너무나도 더운 탓에 시원한 생맥주와 초밥은 꽤 괜찮은 초이스였다.
이렇게 나의 억지로 간 오사카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물론 순간순간의 즐거움과 행복함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정말 재미없고 마음이 힘든 여행이었다.
혼자 여행을 좋아해서 국내, 해외 가리지 않고 잘 다녔던 나이지만, 이번 오사카 여행 이후로 이제 웬만하면 혼자 여행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제 혼자 여행은 질렸나 보다.
상실감으로 인해 텅 빈 마음 때문이었을까, 백수라 가벼운 주머니 사정 때문이었을까.
처음으로 ‘여행’이라는 것을 하며 온전히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목적은 환기였지만 환기는커녕, 뭔가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하여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온 여행이었다.
3박 4일 동안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나도 행복하고 싶다.” “나도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 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