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번호: 0000] 모든 숫자가 사라진 날,
이나는 시간 너머의 자신과 대화했다.
그날 아침,
이나는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뜨지 않았다.
알람이 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핸드폰이 꺼진 것도 아니었다.
그냥… 숫자가 사라져 있었다.
화면은 켜져 있었지만,
시간도, 날짜도, 배터리 잔량도 표시되지 않았다.
이나는 노트북을 켰다.
시계 앱, 캘린더, 심지어 파일 이름까지—
모든 숫자가 공백으로 변해 있었다.
“……?”
그제야 이나는 깨달았다.
숫자만 사라졌다.
다른 모든 것은 멀쩡한데,
‘시간’과 ‘기록’이 제거된 것이다.
거리에 나가봤다.
버스 LED 전광판, 지하철 시계, 약국의 대기번호판—
모든 숫자가 멈춰 있었다.
빛은 켜져 있는데, 값이 없다.
누군가가 이나에게 물었다.
"지금 몇 시예요?"
이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이,
갑자기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온 이나는
자신의 블로그에 접속했다.
모든 글의 업로드 시간이
“: :”
“: :”
“: :”
숫자들이 전부 빈칸으로 변해 있었다.
단 하나의 글만이 남아 있었다.
제목:
[Angel Code: 0000]
본문:
숫자가 멈추면,
기억은 차원을 초과한다.
시간을 벗어난 자만이
진짜 ‘존재’를 감각할 수 있다.
이나는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검색 결과: 0건
존재 자체가 검색되지 않았다.
이나라는 이름이, 기록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그 순간,
이나의 몸이 순간적으로 가벼워졌다.
심장이 멈춘 것도 아닌데,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감각.
모든 게 조용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지금,
존재의 경계에 서 있다.”
이나는 입을 열었다.
“숫자가 사라졌는데… 왜 나는 아직 존재하죠?”
그 목소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지막 알림 하나가 떴다.
화면 중앙, 커다랗게 적힌 숫자:
[ 0000 ]
그 아래, 작은 문장:
"모든 것이 다시 쓰일 준비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