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쌀통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은 그 말을 농담처럼 꺼냈다.
“아이고, 명이 질겨서 밤새 쌀통에 넣어놔도 살아남았지!”
“출장 갔다 온 아버지가 다음날 찾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노.”
그 속에서 나는 기름방울처럼 겉돌았다.
웃어야 했지만 웃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말들은
내가 이 세상에 얼마나 조용히,
그 누구의 환영도 없이 왔는지를 알려줬기 때문이다.
엄마는 마흔 살에 나를 낳았다.
딸 많은 집의 막내딸로 태어난 나는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작은 방 한쪽 커다란 쌀통 안에 눕혀졌다.
포근한 엄마 품도,
따뜻한 속싸개도 없었다.
내가 처음 맞은 세상은
쌀가루 냄새가 가득하고
어두우며 조용한 공간 한편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울지 않고 하루를 버텼다
내가 원해서 견뎠던 건 아니다.
그저…
내가 선택한 것도, 원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게 나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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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유 한 통 살 돈도 없었고,
젖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누룽지를 끓인 물은
젖을 대신했고
나는 살기 위해 또 그것을 먹었다고 했다
태어나자마자 배고픔을 배웠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나는
쉬지 않고 울어대고
엄마는 화장실 갈 때도
나를 업고 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소리 없이 흐르는 엄마의 숨결이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이었던 거 같다
낮고 작은 엄마의 노랫소리는
내 몸과 마음을 다독이며
나는 그 안에서 잠들고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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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등에서 벗어나
혼자 걸음을 내딛던 어린 나에게
공포는 미루지 않고 찾아왔다.
몸도 마음도 여리고 약해서
세상의 바람결 하나에도 흔들렸고,
특히 밤이 되면 나는 더 작아졌다.
어둠 속, 이불속에 누워
검고 무거운 그림자가 천장을 덮을 때면
나는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던 기억이 난다
아직 몇 살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섯 살쯤이었을까
눈을 감은 채, 어디선가 다가오는 ‘무엇’을 느꼈다.
그 존재는 말이 없었고,
두려움은 귀신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워버릴 것만 같은 어둠’에 가까웠다.
나는 그 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무게 아래에서 숨만 쉬며 버텼다.
지금 돌아보면 그 밤은 어린 시절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확신한다.
그때 내가 느꼈던 두려움이 현실이었다는 사실을
그 공포는
내가 세상에서 처음 만난
“고요한 공포”였다.
어쩌면 그날부터
내 안의 어둠을 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다음 편, 기억이란게.. 있는데 없는것 같고
지났는데 아직 안끝난 것 같은
'너는 그때 없었다'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