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같은 사람

봄은 올 것이고, 행복도 올 것이다.

by James Kim






“봄날 같은 사람”

- 이해인

힘들 때일수록 기다려지는

봄날 같은 사람


멀리 있으면서도 조용히 다가와

분위기를 따스하게 만드는 사람


소리를 내어도 어찌나 정겹게 들리는지

자꾸만 가까이 있고 싶은 사람


솔솔 부는 봄바람같이 자꾸만

분위기를 띄워주는 사람


햇살이 쬐이는 담 밑에서 싱그럽게 돋아나는

봄나물 같은 사람


온통 노랑으로 뒤덮은 개나리같이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사람


조용한 산을 붉게 물들인 진달래처럼

꼬-옥 또 보고 싶은 사람


어두운 달밤에도 기죽지 않고 꿋꿋이 자기를 보듬는

목련 같은 사람


봄소식들을 무수히 전해주는

봄 들녘처럼 넉넉함을 주는 싱그러운 사람

너무나 따스하기에

너무나 정겹기에

너무나 든든하기에

언제나 힘이 되는 사람


그 사람은

봄날 같은 사람입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봄날이 이어지면서 다정한 봄의 시를 나는 가만히 읽는다. 그리고 천천히 생각해 본다. 나에게 ‘봄날 같은 사람’은 누구였으며, 나는 누구에게 봄날 같은 사람인 적이 있었는지를.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된다.

봄은 남풍이 불면서 새싹과 함께 꽃이 피는 계절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으로도 내 삶에 찾아왔었다는 것을.

말 한마디로 얼어 있던 마음을 녹여주던 사람,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환해지던 사람. 그들은 마치 꽃이 피는 소리처럼 요란하지 않게 살며시 다가와 내 마음 한쪽에 따뜻한 계절 하나를 심어두었다.


나는 누군가의 추운 겨울 끝에 찾아간 작은 따스함이 묻어있는 봄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혹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간 의미 없는 계절이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잠시라도 온기를 남겼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한 번의 봄은 지나간 것이니까.

어쩌면 인생이란 이렇게 서로의 계절이 되어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비를 막아주는 처마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꽃을 피우게 하는 햇살이 되어 주면서,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시간 속을 조용히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기대고 싶은 기다려지는 봄날 같은 사람들이 있었듯이, 나는 누군가에게 기다려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물어본다. 나는 누군가가 하루 끝에서 떠올리면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었을까. 어두운 밤을 지나며 문득 생각나는 이름 하나, 지친 마음이 기댈 수 있는 작은 등불 같은 존재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 머문 적이 있었을까.

확실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지만, 살아오면서 나는 내가 받은 봄날 같은 많은 미소를 받은 만큼 다 갚지 못한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꼭 갚아야 할 빚처럼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따뜻함은 계산해서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조용히 흘려보내는 것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 돌려주지 못한 미소가 있다면, 그 웃음의 빛은 아마도 또 다른 인연 속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밝히는 등불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사랑과 친절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작은 등불과도 같다. 내가 받았던 온기를 다시 누군가에게 건네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빚이 아니라 삶을 따뜻하게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약속이 된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마음속으로 가만히 다짐해 본다.

내가 지금까지 남에게 다 갚지 못한 봄날이 있다면, 남은 시간 동안 내가 만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조금 더 부드러운 말 한마디를 건네고, 조금 더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천천히 나만의 방식으로 봄을 이어가겠다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내가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봄날을 받은 것처럼, 거기에 맞는 아름다운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타 크리잔(Anita Krizzan)은 말한다.

‘봄은 올 것이고, 행복도 올 것이다. 기다려라. 삶은 더 따뜻해질 것이다.’


이 말은 마치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가지 끝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약속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비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미 봄이 준비되고 있다는 약속의 메시지처럼 들린다. 삶이 우리에게 자주 가르쳐 주는 것은, 따뜻함은 서두른다고 빨리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절실한 기다림으로 자신의 시간을 다 채운 뒤에는 비로소 충만한 기쁨과 함께 우리 곁에 다다른다는 것을.

그래서 기다린다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믿음에 더 가까운 일일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오는 것을 믿는 마음, 아직 느껴지지 않아도 변하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마음, 그것이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가장 깊은 태도인지도 모른다.


기다려야 나의 봄이 되는 것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다가오는 봄은 진정한 나의 봄이 아니다.

결국 삶이 따뜻해진다는 것은 세상이 변한다기보다 우리의 마음이 다시 온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봄은 늘 오고 있었고, 행복도 늘 오는 길 위에 있었으며, 다만 우리가 그 따뜻함을 알아볼 만큼 충분히 오래 기다리고 그리고 걸어왔다는 사실을.


“아직 꽃이 활짝 피지 않았다고

봄이 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직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았다고

행복이 없는 것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는

이미 물이 오르고 있고


소리 없는 가지 끝에서는

작은 숨결이 자라고 있다.


그러니 너무 서두르지 말 것

봄은 약속처럼 오고


행복은 늦지 않게 도착한다.

다만 우리는


그 따뜻함을 알아볼 만큼

조금 더 단단해지면 된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믿어보려 한다.

아직 피지 않은 꽃을 조급하게 흔들기보다, 언젠가 필 것을 알기에 담담히 기다리는 나무처럼, 내 삶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가도록 맡겨두려 한다.

봄은 반드시 오고, 행복도 길을 잃지 않고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알게 될 것이다.

견디며 걸어온 시간조차 이미 봄으로 가는 길이었다는 것을.



Sunday, March 22nd.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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