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고통은 인생의 최악이 아니다.
최악은 무관심이다.
고통스러울 때는 그 원인을 없애려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 감정도 없을 때는 마비된다.
지금껏 인류 역사에서 고통은 변화의 산파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무관심이 운명을 바꾸는
인간의 능력을 짓밟아버릴 것인가?
-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서
(이 책은 에리히 프롬의 미발표 유작을 그의 마지막 조교 라이너 풍크가 엮은 것이다)
에리히 젤리히만 프롬(독일어: Erich Seligmann Fromm, 1900~1980)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대인이자 독일계 미국인으로 사회심리학자이면서 정신분석학자, 인문주의 철학자이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서 인간의 가치 정의를 이렇게 내리며 서두를 시작하고 있다.
“언제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다.
인간은 존재가 아니라 퍼포먼스가 중요하다.”
그의 사유는 인간을 ‘소유하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내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살아있다는 것은 단순히 숨 쉬고 있다는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매 순간을 의식하며 느끼고 반응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 그 자체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이 가져서 행복한가 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느끼며 살았는가일지도 모른다. 기쁨도 슬픔도, 성공도 실패도 모두 살아있다는 증거처럼 우리 가슴에 깊숙이 파문을 남기게 된다. 아무 감각도 없이 무심히 흘러가는 하루보다, 때로는 아프고 괴로워도 마음이 움직이고 느낌이 살아있는 하루가 더 인간다운 시간일 것이다.
그래서 삶이란 완벽해지는 목적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더 생생하게 느끼는 삶의 진솔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아픔에 마음이 흔들리고, 작은 친절에 감사의 온기가 번지고, 사소한 풍경에도 잠시 발걸음을 멈출 줄 아는 것. 바로 그런 순간들이 우리를 단순히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결국 인간의 위대함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고, 얼마나 지식이 높고,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진심으로 오늘을 살아냈는가에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있다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이며, 성취가 아니라 참여이며, 성공이 아니라 깨어 있는 마음으로 하루를 진솔하게 통찰하는 조용한 용기이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의 또 다른 저서 『소유냐 존재냐? To Have or To Be』는 인간 삶의 두 가지 근본적 양식인 ‘소유 지향적 삶’과 ‘존재 지향적 삶’을 비교하며,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와 인간 소외 문제를 비판하는 책이다.
그가 말한 소유 지향적 삶(Having Mode)이란 현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이 스타일은 물질적 재산, 권력, 명예 등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며, 자신과 타인의 가치를 각자가 소유한 것에 따라 판단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소유 지향적 태도는 경쟁과 비교를 부추기고, 인간 소외와 불행을 초래한다. 사람들은 더 많은 재산과 지위를 원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적 성장을 잃어버리고 정신은 황폐화되고 가슴은 메말라간다.
반면에 존재 지향적 삶(Being Mode)은 소유의 양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 성장, 사랑, 협동, 인간성에 주요 가치를 부여한다. 그는 인간 본연의 상태는 ‘존재 Being’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존재 지향적 인간은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 자신의 인격과 존재를 심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는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가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는가, 아니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로 자신을 이해하려 하는가를.
소유의 삶은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게 만들고 부족함을 느끼게 하지만, 존재의 삶은 지금 이 순간 호흡하고 느끼고 나와 주변의 사람과 사물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말해준다.
존재지향적 삶이란 더 많이 가지려는 손을 잠시 멈추고, 이미 내 안에 있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 애쓰는 시간, 아무 대가 없이 베푸는 친절, 그리고 혼자 있는 순간에도 자신의 내면과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평온함.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뿌리인 것이다.
어쩌면 진정으로 잘 산 인생이란 많은 것을 남기고, 많은 명예를 얻은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의 흔적을 남긴 사람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소유했는가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어떻게 존재했는가는 한 사람의 인격이 되어 오래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소유하려는 마음보다 존재하려는 마음을 조금 더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이 가지지 못한 날이라도 깊이 살아낸 하루라면, 그 하루는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의 마무리를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고통은 인생의 최악이 아니다.
최악은 무관심이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란 사람을 보되 겉으로만 보고 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거나, 관심을 갖거나, 심지어 응답을 하는 자체를 철저히 회피하는 행위이다. 그러면서도 주위의 일반적인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타인에게 별로 피해를 주지 않는 듯한 행위를 가장한 고도의 비열한 행동이다.
아일랜드 비평가 버나드 쇼는 무관심에 대해 이렇게까지 말했다.
“인류에 대한 최대의 죄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그것은 비인간화의 극치다.”
버나드 쇼의 말을 통해 우리는 미워하는 마음보다 더 비인간적인 행위가 바로 무관심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살아있는 감정의 심장을 가진 동물이다.
타인의 아픔에 슬픔을, 타인의 행복에 미소를, 타인의 인사에 깊이 고개 숙여 반가이 반응하는 관심을 보이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멋진 사람이 아닐까.
봄날의 꽃들이 피어나 아름다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모두의 날들이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기를 바란다.
Thursday, April 2nd.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