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까지도 더욱 충만하게 채워 주는 것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나약함의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강인함의 표현이다.
손을 들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말하고,
당신의 성공을 응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화함으로써
당신의 목표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제이슨 워맥 ‘겟 모멘텀(Get Momentum)’에서
제이슨 워맥은 《포춘》이 선정한 변화를 선도하는 500대 리더 중 한 명이자, 미국의 100대 최고 행동 변화 사상가다. “오랜 시간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생산성을 높여주지 않는다”라고 강조하는 그는 인간의 행동 변화를 토대로 사람들의 개인적 특성에 따라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도구와 시스템을 연구했다. 그리하여 20여 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의지력을 극대화하는 ‘겟 모멘텀(Get Momentum)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더 많이, 더 빨리’를 강요하며 개별적 특성에 상관없이 주입하는 일괄적인 자기 계발의 방식은 일시적인 처방일 뿐 지속적인 행동 변화에 소용이 없다고 강조한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워크-라이프-밸런스(Work-Life Balance)를 이룰 수 있는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들을 전파하고 있다. (예스 24 작가소개에서)
인간은 서로를 도울 줄 아는 진보된 문화인으로서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어 힘을 보태고, 병들고 약한 자를 보면 측은지심을 발휘한다. 이런 것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그런 마음은 대단한 영웅담 속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평범한 하루의 장면들 속에서 더 깊이 드러난다. 비 오는 날 우산을 함께 써 주는 작은 배려, 지친 사람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조용한 경청,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앞사람의 순간적인 손길 같은 것들이 모여 인간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한 곳으로 바꾸어 간다. 어쩌면 인간다움이란 특별한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자기 마음의 일처럼 느낄 줄 아는 그 다정한 마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삶에 잠시 머무는 인연일지라도, 그 짧은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는 빛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큰 행복은 남을 위해 사는 것이다. “
이 말은 행복이란 멀리 있는 어떤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작은 등불 하나 밝혀 주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진심 어린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용기가 되고, 어둡고 막막한 하루를 건너게 하는 다리가 되기도 한다.
결국 남을 위해 도움을 주는 행위는 자신을 희생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은 나눌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샘물처럼 더욱 깊어지고 맑아져 결국 자기 자신의 삶까지도 더욱 충만하게 채워 주는 것이 된다.
‘가톨릭일꾼운동’을 창시했던 피터 모린 (Peter Maurin)은 “모두가 가난해지려 하면 아무도 가난해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공동체 속에 사는 우리 모두는 스스로 조금씩 가난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나만을 생각하지 말고 타인을 위해 나의 것을 기꺼이 베풀 줄 아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일 것이다.
그의 텍스트는 결국 소유를 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의 욕심을 덜어내라는 깊은 의미의 권유일지도 모른다.
내가 조금 덜 가지면 누군가는 조금 더 숨 쉴 수 있고, 내가 조금 양보하면 누군가는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눔이란 손해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 된다.
들판의 나무들이 서로 햇빛을 독차지하려 하지 않고 바람과 빛을 함께 나누며 숲을 이루듯이, 우리 또한 서로 기대어 살아갈 때 비로소 더 단단한 삶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진정으로 풍요로운 삶이란 혼자만 많이 쌓아두는 삶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 따뜻해지는 삶일 것이다.
제이슨 워맥이 ‘겟 모멘텀(Get Momentum)’에서 말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나약함의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강인함의 표현이다.’ 이 말의 참뜻은 도움을 요청하는 건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더 나아지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혼자서 모든 걸 견디려는 것보다 훨씬 용기 있는 선택일 수 있다.
사람은 원래 서로 기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필요할 때 손을 내미는 건 약함이 아니라,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렇게 손을 들고 자신의 필요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순간, 이미 변화는 시작된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말로 꺼내는 건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스스로의 방향을 분명히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신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혼자서는 보지 못했던 가능성이나 해결책도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그런 연결과 대화들이 쌓이면서, 목표는 더 이상 막막한 것이 아니라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이 된다.
'전등(傳燈)'이란 사람이 사람에게 어두운 밤길을 밝혀 주는 등불을 전달해 주는 단어라 한다. 도움도 전등처럼 사람이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다.
전등처럼 사람에서 사람으로 빛이 이어진다는 건, 단순히 도움을 주고받는 걸 넘어서 희망과 용기를 나눈다는 의미이다. 누군가의 작은 손길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빛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받은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주면서 계속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길을 조금씩 밝혀주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종종 “크게” 도움을 준 순간만 떠올리려고 하는데, 사실 사람에게 남는 건 아주 작은 장면들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날, 힘들 때 옆에 조용히 있어준 순간, 별 의미 없이 건넨 한마디가 상대에게는 오래 남아 있기도 하다.
어쩌면 당신은 이미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그걸 직접 느끼거나 듣지 못했을 뿐일 수도 있다. 가만히 조금 더 떠올려보면 어떨까.
누가 당신에게 편하게 연락해 왔는지, 누가 당신 앞에서 솔직해졌는지, 혹은 당신과의 대화 이후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 보였던 사람이 있었는지.
그 순간들이 바로 당신이 누군가에게 “등불”이었던 자리일 수도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나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나”보다 의 과거보다 “앞으로 어떤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인가” 의 미래일 것이다.
존 던(John Donne)의 No man is an island...로 시작하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들어보라.
“아무도 섬이 아니다, 스스로 완전한 존재는 없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전체의 일부이다.
.....
나는 인류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려 하지 마라;
그것은 너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
꽃잎이 분분히 흩날리는 바람 부는 저녁에
너를 위해 가만히 따뜻한 미소를 보낸다.
Saturday, April 4th.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