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불치(不治)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길이 있다.

by James Kim




"남김없이 미(美)에 감싸이면서

어떻게 인생에 손을 뻗칠 수 있겠는가?

미의 입장에서도

나의 단념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리라.

한 손으로 영원을 만지면서

다른 한 손으로 인생을 만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에서



지극한 아름다움에 마음을 다치면 불치(不治)다.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아름다움을 우연히 마주하는 기회가 발생한다. 그 아름다움이 사람의 것이든, 자연의 것이든, 아니면 진리의 텍스트 이든 운명처럼 마주할 일이 생긴다.

어느 날 문득 마주한 아름다운 사람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유발하기도 한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의 아름다움을 본 순간 도저히 어쩌지 못하고 그녀를 유혹해 자국으로 데려가 벌어진 일은 트로이 전쟁이라는 대재앙을 일으켰다.

안나 카레니나는 잘생긴 청년 장교 브론스키의 아름다움에 빠져 가정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해서 결국은 기차바퀴에 몸을 던지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었다.


사람의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마음을 다친 불치가 아니라 하더라도 자연과 계절의 아름다움에 몸과 마음을 다쳐 헤어져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봄날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들과 따스한 봄바람에 불어오는 춘기(春氣)는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만들기도 한다.


신라 신문왕 때 젊은 21세 미모의 여승 설요(薛搖)는, 이 아름다운 봄에 어쩔 수 없어 반속요(返俗謠:환속의 노래)를 남기고 산사를 버리고 세상으로 나온다.


化雲心兮思淑貞 (화운심혜사숙정)

“구름마음 되어 순결하자 맹세했건만”


洞寂滅兮不見人 (동적멸혜불견인)

“깊은 골 괴괴한 절간 사람은 안 보이네”


瑤草芳兮思芬蒕 (요초방혜사분온)

“꽃 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


將柰何兮是靑春 (장내하혜시청 춘)

“장차 이 청춘(젊음)을 어찌할거나”


그녀의 노래는 단순한 환속의 고백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근원적인 떨림의 기록처럼 읽힌다. 아무리 굳게 다짐한 마음이라도 아름다움의 떨림 앞에서는 스스로를 지켜내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꽃은 피어나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바람은 스치는 것만으로도 오래 묻어두었던 감정을 깨운다. 그렇게 자연은 아무 말 없이 다가와, 인간의 결심과 이성을 조용히 무너뜨린다.


아름다움은 늘 그렇게 우리를 시험한다. 붙잡을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는 그 무엇으로 다가와, 결국 우리를 우리가 아닌 다른 자리로 이끈다. 설요가 산사를 내려온 것도, 누군가는 사랑을 따라 삶을 버리는 것도, 어쩌면 모두 같은 흐름 속에 놓여 있는 일일 것이다. 지극한 아름다움 앞에서 인간은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선택되어 버린 존재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묻는다. 이 마음을 끝내 지켜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부서지더라도 한 번쯤은 그 아름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그러나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 이미 마음은 다치고, 이미 우리는 한 시절을 지나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남는 것은, 한때 너무도 찬란하여 감당할 수 없었던 순간에 대한 기억과, 그로 인해 조금 더 깊어져버린 우리의 영혼뿐이다.


음악의 아름다움에 깊이 매혹된 이들은 세상의 다른 소음들을 하나둘 내려놓고, 오직 소리의 결을 따라 살아가며 마침내 위대한 음악가와 작곡가가 된다. 자연의 풍경이 지닌 찬란함에 마음을 빼앗긴 이들은 그 순간을 붙잡고자 붓을 들고, 결국 한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남는다. 또한 진리와 논리의 질서 속에서 깊은 아름다움을 발견한 이들은 사유의 길을 택해 철학자이자 구도자로 살아간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가장 깊이 매혹된 아름다움의 방향으로 삶을 기울이며, 그 기울어짐이 곧 그의 운명과도 같은 길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는지는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우리가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를 조용히 결정짓는 힘이기 때문이다. 한 번 사로잡힌 아름다움은 우리의 시간을 바꾸고, 선택을 바꾸고, 끝내는 우리의 존재 방식까지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어쩌면 인생이란, 수많은 아름다움들 속에서 단 하나를 알아보고 그 곁에 오래 머무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 가지 아름다움 곁에 탐닉하는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을 너무 모르고 어설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그 행동 속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떨림이 태어나고, 같은 빛도 날마다 다른 표정으로 스며든다. 한 음을 오래 붙드는 음악가의 숨결처럼, 한 장면을 수없이 되새기는 화가의 시선처럼, 한 문장을 끝내 놓지 못하는 사유하는 이의 밤처럼, 그들의 삶은 반복이 아니라 점점 깊어지는 침잠에 가깝다.


결국 아름다움에 머문다는 것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일이다. 세상은 그것을 집착이라 부르기도 하고 고독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살아 있음의 가장 선명한 증거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알고도 그 길을 택한다.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곳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간다.


어떤 사람에게는 피할 수 없는 길이 있다. 때로는 그것이 파멸로 향하는 길일지라도, 멈출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끝내 걸어가게 되는 길이 있다.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이미 정해진 흐름에 가깝다.


그러므로 타인이 걷는 그 길 위에 함부로 자신의 기준과 이정표를 세우려 하지 말아야 한다. 각자의 삶에는 각자의 이유와 필연이 있으며, 그 길은 오직 그 사람만이 감당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각자의 운명은, 누구의 표지판도 없이 스스로 끝까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Sunday, April 12th.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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