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게으른 삶을 위하여

‘시간 낭비’는 인간의 기본 욕구다.

by James Kim





“느긋하게 적당히 게을러질 때,

우리는 반성하고 재충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교감하고,

좋아하는 취미를 다시 시작하고 일부러 느긋한 속도로

세상을 헤쳐 나아갈 시간을 찾을 수 있다.

‘시간 낭비’는 인간의 기본 욕구다.

일단 그것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하고 균형 잡힌 삶을 꾸릴 수 있다.”


― 데번 프라이스(Devon Price)

『게으르다는 착각 Laziness Does Not Exist』에서

우리는 이제까지 세상을 너무 바쁘고 급하게 살아왔다. 아니, 우리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산업화 시대를 겪어온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바쁘고 급하고 부지런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며 뒤 돌아볼 시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었다. 근면 성실함이 인생의 보편적 가치에 알맞은 사람으로 치부되어 왔으며 게으름을 부리는 사람은 가난하게 살거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루저로 인식되는 사회상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무엇을 위해 이토록 서둘러 왔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하루와 하루는 성취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점점 비어 가는 마음과 놓쳐버린 순간들이 쌓여 허무라는 이름과 함께 공허감이 마음속 가득히 쌓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는 ‘잘 살아간다’는 말의 의미를 너무 오랫동안 속도와 효율 속에만 가두어 두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잠시 걸음을 늦추고, 지나온 길 위에 남겨진 우리의 흔적들을 돌아볼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데번 프라이스가 말한 대로 느긋하게 적당히 게을러질 때, 우리는 반성하고 재충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교감하고, 좋아하는 취미를 다시 시작하고 일부러 느긋한 속도로 세상을 헤쳐 나아갈 시간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느긋함과 적당한 게으름은 단순한 나태가 아니라 삶을 다시 회복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여유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소진된 마음을 채우며, 잊고 지냈던 관계와 감정을 다시 이어갈 수 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휩쓸려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삶의 결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순간들이 그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정한 균형은 더 많이 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멈추고 덜어내는 데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Devon Price는 시간 낭비는 인간의 기본 욕구라고 말하며, 이를 억누르기보다 받아들일 때 비로소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근면과 효율을 최일선의 가치로 삼으며 산업화를 이끌어 온 우리 사회의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 시각이다.

이러한 발상은 단순한 가치관의 차이를 넘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삶의 기준을 다시 묻게 만든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아 온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늘 불안과 죄책감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을 비워두는 용기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바쁨을 미덕으로만 여겨왔던 시선에서 벗어나, 비어 있는 시간 속에 담긴 의미를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근면과 성실함만으로 모범을 보이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 고급스러운 휴식과 여행을 즐기며 산업화 시대를 넘어서는 뛰어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쉼과 여유를 통해 얻은 감각과 경험은 창의성과 깊이를 더하며,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더 이상 오래 일하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얼마나 잘 쉬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현대의 경쟁력은 속도가 아닌 균형에서 비롯되며, 그 균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삶과 진정한 성취를 함께 이루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무엇이든 열심히 하라’는 말은 개인의 특기와 개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잘하라는 요구처럼 들린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강점과 고유한 특성을 바탕으로, 무엇에 집중해 노력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오리지널스』를 집필한 Adam Grant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열심히 연습하면 완벽해질 수는 있지만, 독창성이 생기지는 않는다. 신동들은 모차르트의 선율과 베토벤의 교향곡을 훌륭히 연주하지만, 스스로 독창적인 곡을 작곡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기존의 지식을 익히는 데 에너지를 쏟을 뿐,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자신의 에너지를 쓰느냐일 것이다.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을 따라가는 노력은 일정한 수준의 성취를 가져다줄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시선과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모방을 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시도하며 실패를 감수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잠자리에 들며,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는 삶은 결국 신체의 건강을 해치고 마음의 안정마저 무너뜨린다. 그 결과 우리는 더 빨리 지치고, 정신적으로도 점차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단기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끊임없는 소모 속에서는 본래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적절한 휴식과 균형 잡힌 삶이야말로 더 깊은 집중력과 안정된 성과를 가능하게 한다. 결국 진정한 경쟁력은 자신을 혹사시키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스스로를 지키고 심신을 조율할 줄 아는 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지식 정보화 시대를 살아나가는 현세대에서 앞서 나가는 사람은 더 오래 열심히 일하며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쾌적한 조건의 환경에서 느긋하고 차분히 생각하며 개인의 특성을 살려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내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내가 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다음 생에서는 실수를 더 많이 하고 싶다. 더는 완벽해지려고 하지 않고, 더 느긋하게 지낼 것이다. 지금까지 보다 조금 더 정신 나간 상태로, 많은 일을 심각하지 않게 여길 것이다. 그다지 건강하게만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모험을 하고, 더 많은 여행을 하고, 더 많은 해넘이를 바라보고, 산에 더 많이 오르고, 강을 더 자주 헤엄칠 것이다. 나는 매 순간을 낭비 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똑똑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물론 즐거운 순간도 있었지만,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순간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누리고 싶다. 삶이 오로지 이런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아직 모른다면 지금 이 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나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맨발로 다닐 것이다. 생이 아직 남아 있다면 아이들과 더 많이 놀 것이다. 하지만 보라... 나는 이제 85세고, 곧 죽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 슈테판 셰퍼의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에서



Thursday, April 16th.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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