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아니라 가슴이 떨릴때 떠나는 여행
“여행에서 나는 자유로웠고,
또 언제나 외로웠다.
떠돌이별처럼 많은 길을 흘러 다녔다.
그러나 항상 따뜻한 힘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는
별자리들처럼 나를 우주의 끝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류 시화 [지구별 여행자]에서
여행! 이 단어는 항상 나를 설레게 한다.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은 이제까지 살아온 나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것과의 만남은 다소 생경하면서도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처음 가보는 곳의 골목길을 걸을 때 만나는 모든 것들은 나를 새롭게 한다. 거기서 부딪치는 모습과 소리와 사람은 이제까지의 나의 관점과 시야를 벗어난 것들이다. 낯섦과 새로움 속에서 조심스럽게 내딛는 발걸음은 가벼운 설렘을 가지고 미지를 향한 뭔지 모를 새로움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다.
오래된 소나무 숲을 걸을 때 솔향을 느끼며 나무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들으려 귀를 기울여본다. 왕릉이나 유서 깊은 사찰의 진입로에 있는 늙은 소나무는 그곳의 역사와 그 당시의 인물들에 대해 가만가만 속삭이듯 말해준다. 가끔 내 걸음이 급해 옛이야기를 흘릴까 잠시 서서 듣는다. 늙고 오래된 소나무는 어느 한쪽이 지난 큰바람에 부러지고 꺾어진 채 앓고 있다. 누렇게 시들어진 솔잎을 매단 채 어렵게 말을 이어간다. 솔밭에 부는 바람은 소나무의 옛이야기이다.
소나무 숲 속 그 안에 큰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보기에도 웅장하고 늠름하게 늙은 소나무들과 함께 어울려 있다. 그늘진 아래쪽에 푸른 이끼가 가득하고 갈라진 틈새 위쪽에서는 여리고 구부러진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가만히 손을 들어 거친 바위를 쓰다듬으며 세월을 느껴본다. 소나무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간직한 바위는 말이 없다. 그러나 바위가 전하는 아주 오래된 진실과 포용력이 느껴진다.
여행은 이렇듯 나와 익숙한 나의 거처를 떠나 길 위에서 옛것과 현재의 나를 만나고, 또한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을 통해 교감과 소통을 통해 나의 의식의 장을 넓히는 기회이다.
여행 서적 중에서 내가 가장 즐겨 읽던 책 중 하나가 1960년대 히피 운동을 탄생시키는 도화선을 만든 잭 케루악(Jack Kerouac)의 ‘길 위에서’였다. 한때 전 세계 젊은이들을 길 위로 이끈 책 ‘길 위에서’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작가 잭 케루악(Jack Kerouac)이 그의 체험을 토대로 쓴 글이다.
이 책은 뉴욕에서 덴버, 샌프란시스코, 텍사스, 멕시코시티에 이르는 광활한 미대륙을 히치하이크로 횡단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청춘의 눈에 비친 풍경과 길 위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묘사를 끝없이 펼쳐놓는다.
울적하고 쓸쓸한 가을밤에 고독과 외로움에 가득 쌓여 술 한잔 마시고 부르고 싶은 노래는 가사가 저절로 눈물을 부르는 애잔한 노래로 가수 최백호가 부른 ‘길 위에서’이다.
“길 위에서”
- (최 백호 노래/ 이 주엽 작사/ 김 종익 작곡)
긴 꿈이었을까
저 아득한 세월이
거친 바람 속을 참 오래도 걸었네
긴 꿈이었다면 덧없게도 잊힐까
대답 없는 길을 나 외롭게 걸어왔네
푸른 잎들 돋고
새들 노래를 하던
뜰에 오색향기 어여쁜 시간은 지나고
고마웠어요
스쳐간 그 인연들
아름다웠던 추억에 웃으며 인사를 해야지
아직 나에게 시간이 남았다면
이 밤 외로운 술잔을 가득히 채우리
푸른 하늘 위로
웃음 날아오르고
꽃잎보다 붉던
내 젊은 시간은 지나고
기억할게요 다정한 그 얼굴들
나를 떠나는 시간과 조용히 악수를 해야지
떠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면
이 밤 마지막 술잔에 입술을 맞추리
긴 꿈이었을까
어디만큼 왔는지
문을 열고 서니 찬 바람만 스쳐가네
바람만 스쳐가네.
특히 이 노래 ‘길 위에서’의 애잔한 이별의 가사를 쓴 작사자가 “이 주엽”이다. 이 사람은 2020년에 한국 대중음악사의 빛나는 문장들이라는 부제로 ‘이 한 줄의 가사’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한 줄의 가사’ 서문에서 그는 “가사는 지면이 아니라 허공에서 명멸한다. 써서 읽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르는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운명이다. 읽지 말고, 듣고 불러 봐야 안다. 그게 얼마나 좋은 가사인지를.”이라고 썼다.
우리가 즐겨 부르던 많은 대중가요의 가사를 에피소드와 함께 해박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그는 <JNH뮤직> 대표이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는 ‘휘파람을 부세요’를 부른 가수 정미조,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 등의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다.
나는 여러 번 박주원의 기타 연주를 들어본 적이 있다. 나의 아들이 그를 나에게 소개할 때 박주원은 대한민국 최고의 기타리스트라고 했다. 어쨌든 그의 기타는 속주가 일품이다. 듣고 나면 속이 시원해진다.
독서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돌아다니며) 하는 독서이다.”라는 표현을 정말 좋아한다. 젊고 힘이 있을 때 떠나는 친구나 연인과의 가슴 떨린 여행도 좋지만, 쓸쓸하고 힘든 날에 홀로 자신만을 위해 떠나는 위로 여행도 좋다.
삼월 초의 이른 봄날에 매화 향기를 따라 섬진강 줄기를 따라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에 가는 것도 좋으며, 삼월 중순의 지리산 밑 산동마을의 돌담길과 개울가에 피어나는 노란 산수유를 보는 것도 좋다. 또한 3월 하순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흰 벚꽃이 피고 흩어지는 혼인길을 천천히 걸어보는 3월 지리산과 섬진강의 3대 꽃 잔치 여행을 떠나는 일은 상쾌하다.
사월이 오면 복사꽃이 무더기로 피어있는 국도 34호선을 따라 영덕 넘어가는 황장재를 지나 지품면에 들어서면 분홍빛 복사꽃이 달큼한 향기와 함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지품면 일대에 유독 복숭아밭이 많이 있는 이유는 1959년 우리나라를 강타한 태풍 사라호에 오십천이 범람하여 농토가 모두 쓸려간 땅에 지역주민들이 복숭아나무를 심어 재기하였다 한다. 여름철 맛있는 과육 많은 복숭아를 제공하는 그 복사꽃이 여기에 이렇게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가슴 아픈 사연이다.
오월은 말하지 않아도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르듯이 여기저기에 아름다운 꽃들과 푸르른 초목이 우리나라의 온 산야를 풍요롭게 하는 계절이다. 어디를 가도 나무의 연초록 새잎들과 화려한 꽃들이 물결을 이루며 피어난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꽃구경도 좋지만 커다랗고 높은 나무들이 제공하는 시원한 나무 그늘 사이를 산들바람과 함께 산책하는 즐거움이 좋다.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가까운 수목원이나 왕릉을 방문한다면 절대로 실패할 일이 없다. 특히 왕릉 가는 길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쭉쭉 뻗어있는 키 큰 소나무 사이를 걸어가면 가슴이 청량해진다.
여름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단풍의 계절 가을이 온다. 가을은 낙엽과 함께 스치는 바람에도 쓸쓸함이 묻어난다. 조령이라고도 불려지는 문경새재 옛길을 걸어보자. 옛 영남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하여 한양으로 짚신을 신고 걷듯이 산바람과 함께 터벅터벅 맨발로 걸어보는 운치도 아름답다.
또한 설악 오색약수터에서 톡 쏘는 약수를 한잔 마시고 시작하는 주전골 걷기는 시기만 잘 맞춘다면 단풍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가 아니겠는가? 계곡을 훑고 내려오는 가을 산바람을 함께 온몸으로 느끼며 설악의 기암괴석과 거기에 위태롭게 의지하며 걸쳐있는 소나무들을 보면서 걸어보는 것 또한 가을의 묘미가 아닐 수 없다.
겨울은 역설적이게도 따뜻한 계절이다. 한겨울에 차가운 동해 바다와 마주쳐오는 푸른 파도와 혹독한 겨울바람을 마주하며 포효하는 기상도 청춘의 호기라지만, 따뜻한 찻집의 난롯가에 앉아 지인들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아름답다. 또한 흔들의자에 앉아 무릎에 가벼운 담요를 두르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조용히 홀로 하는 독서는 보는 이의 마음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이렇듯 겨울은 추운 계절이라기보다는 따뜻한 계절이라는 아름다운 표현으로 바꿔주는 것도 길고 혹독한 추위를 벗어나는 마음의 자세라 생각한다.
사시사철 언제나 아름다운 계절에 떠나는 여행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우리는 흔히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 다리가 떨릴 때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라고 말을 한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여러분! 미루지 말고 바로 지금 가슴 뛰는 순간에 돌아다니며 하는 독서를 즐겨 보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Monday, September 15th.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