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밀란 쿤데라의 책을 보면 특이한 점이 작가소개가 다음의 딱 두 문장이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1975년 프랑스에 정착하였다.”
참고로 그는 1929년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출생하여 2023년 프랑스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곤 했으나 생전에 끝내 수상 받지 못하였다.
그의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영원한 회귀로 시작한다.
그는 “영원한 회귀는 신비로운 사상이지만 이미 겪었던 일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견딜 수 없는 책임의 무거운 짐을 떠맡는 잔혹한 발상이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면서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라고 우리에게 묻고 있다.
빗소리에 깨어 일어난 일요일 아침에 묵직함의 무게와 가벼움의 무게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나의 삶의 무게는 나이를 먹으며 쌓아온 세월과 연륜으로 인한 바위와 같은 묵직함일까 아니면 깃털처럼 훨훨 날아갈 만한 가벼움일까?
밀란 쿤데라도 묵직함과 가벼움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는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의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한 그의 말이 맞는지에 대해서도 심사숙고하고 있다.
묵직한 무거움의 무게를 가진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유기체로서는 돌이나 바위, 무쇠나 자동차, 건물이나 선박,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무게감은 무엇이 있을까? 삶의 무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무게감, 직장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부서장으로서의 무게감, 한 국가의 국민이나 시민으로서의 무게감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풀어놓고 보니 무게감이라고 하는 것이 부정적이라고 한 파르메니데스의 말이 맞는 듯도 하다.
그러면 이번에는 가벼움에 대해 알아볼까? 유기체로서는 깃털, 풍선, 가벼운 종이 한 장, 바람 불어와 흩날리는 봄날의 매화 꽃잎이나 벚꽃 잎, 하늘에 날리는 습기를 머금지 아니한 흰 눈가루 등이 있다. 객관성을 벗어나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눈에 잘 안 보이는 가벼움은 날듯한 자유의 기쁨, 가벼운 마음의 편안함, 홀가분한 마음의 자세 등은 긍정적 표현이 맞다. 그러나 이와 어울리지 않는 촐싹거리는 남자친구의 치기 어린 행동의 가벼움, 회사의 중요한 계약을 앞에 두고 있는 엄중한 결정 토론 회의에서 주책없이 큰 소리로 울리는 신입사원의 휴대폰 소리, 상황에 맞지 않는 질문이나 주제에 어긋나는 답변으로 주위를 차갑게 식혀버리는 가벼움 등이 있다.
과연 파르메니데스의 말대로 가벼움이 긍정적일까? 물론 내가 보는 가벼움과 고대 철학자가 보는 가벼움은 시대의 차이와 개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밀란 쿤데라 그가 내린 결론은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이다.
모순(矛盾)이라는 표현을 써서 무거움과 가벼움의 구분이 신비롭고 미묘하다고 표현한다. 긍정적이라고 하기에도 부정적이라고 하기에도 모순이며,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에도 그렇지 않다고 표현하기에도 애매모호한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비 오는 일요일 아침에 너무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글을 풀어나가려 하니 아무도 마음 써서 들여다보는 이 없을 공간을 메꾸려 애쓰는 나 자신의 무게가 한없이 허전해진다. 허전한 마음은 무거움일까 아니면 가벼움일까?
나의 삶의 목표는 행복 추구에 있다.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는 단 하나의 삶을 사는 우리가 우리를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행위이다. 두 번 오지 않는 인생을 위해 가치 있게 행복을 추구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바치는 일이나, 출세를 위해서만 전력을 다하는 인생은 자기 맡은 바 직무에 최선을 다하는 멋진 일처럼 얼핏 보일 수 있으나 결코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없다. 다 써보지도 못할 돈을 버느라 청춘과 젊음을 보내고 다 누리지도 못할 권력을 차지하느라 남을 짓밟고 비방하여 원성을 듣는 일을 하고 있다.
나의 삶의 무게를 측정해 보고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나가기를 바란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나는 쾌락을 찾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찾아. 행복 없는 쾌락은 쾌락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내가 성취한 권력과 지위가 너무 무거워 나는 늘 무게 잡고 묵직한 언어와 무게감 있는 행동으로 세상을 살아 나간다. 얼핏 남들이 보기에는 성공한 인생을 사는 묵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비쳐 보일 수 있으나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의 무게가 그대를 힘들게 하리라.
비록 가진 것은 적으나 거기에 만족하고 건강한 몸으로 현실에 만족하며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삶은 인생의 무게가 가볍다. 타인을 억누르고 내가 먼저 하는 승진과 출세는 늘 마음속에 부담으로 남아 자신을 괴롭힌다. 자신의 역량에 맞추어 조급해하지 않고 순리에 따르는 직장생활은 업무에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남들을 의식하지 않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며 압박의 무게도 존재하지 않는 삶이다. 깃털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나간다.
밀란 쿤데라는 말한다. “끊임없이 ‘신분 상승’을 원하는 자는 어느 날엔가 느낄 현기증을 감수해야만 한다. 현기증이란 무엇인가? 추락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튼튼한 난간을 갖춘 전망대에서 우리는 왜 현기증을 느끼는 것일까? 현기증, 그것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현기증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공허의 목소리, 나중에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아무리 자제해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추락에 대한 욕망이다.”
우리의 인생은 단 한 번뿐인 삶이다. 종교가 없으니 회귀도 없으며 윤회도 없다. 내세의 천국과 지옥을 논하기에는 이 삶이 너무 덧없다.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여 세상을 살아야 한다. 사랑하며 행복을 추구하고 타인들과 공감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Muss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Ja, es muss sein! 네, 그래야만 합니다.
파르메니데스와는 달리 베토벤은 무거움을 뭔가 긍정적인 것이라고 간주했던 것 같다. 진중하게 내린 결정은 운명의 목소리와 결부되었다. “es muss sein! 그래야만 합니다!” 무거움, 필연성, 그리고 가치는 내면적으로 연결된 세 개념이다. 필연적인 것만이 진중한 것이고, 묵직한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민음사 page 58~60]
Sunday, September 28th.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