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전거는 함께 늙어간다.
“이제, 세상의 변방 가장자리에 주저앉은 자에게
가장 볼만한 것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들이다.
바닷물이 해안으로 달려들면서 강들을 내륙 깊숙이 누르는 풍경이나
원양을 건너가는 철새들의 날개짓은 이 세상의 찬란하고 거대한 절정이다.”
김 훈 [자전거 여행 2]에서
작가 김훈은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 ‘자전거 여행’은 청춘이 훨씬 지난 몸으로 직접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체험하고 쓴 글이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우리의 산하와 함께 글 속에 녹아있다.
그가 ‘자전거 여행’ 책을 펴내며 쓴 글에서 “벗들아,”로 시작하는 두 번째 연에서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라고 썼다.
작가 김훈의 글을 읽다 보면 처연하게 무릎을 꺾는 묘사의 아름다움이 슬픔을 넘어선다. 그의 뛰어난 필력과 경륜이 글을 읽음으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억지스럽지 아니하고 어렵게 묘사하지 않으면서 읽는 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 이것이 김훈 작가의 힘이다. 편한 듯하면서도 편하지 않고 어려운 듯하면서도 어렵지 않은 문장의 전개는 읽는 이의 몰입을 불러온다. 읽다 보면 책 속의 거기 그 장소에 읽는 이가 가 있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 순간에 존재하는 책 속의 그 사람이 글 읽는 이의 그 사람이 된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그의 작품을 가만히 읽다 보면 디테일한 묘사가 백과사전을 능가하며 감정이입이 함께 하여 서정적인 서사에 가만히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다음 그의 책 ‘자전거 여행 1’의 산수유에 대한 그의 글의 묘사 장면을 잠깐 살펴보자.
“선암사 뒷산에는 산수유가 피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나는 거의 매년 3월 중순께 전라도 구례에 산수유꽃을 보러 간다. 전라도 구례 산동면에 가면 산수유 군락지가 있다. 돌담길과 어우러진 산수유가 있고 개울가와 함께하는 산수유가 있다. 이때쯤이면 그 마을에서는 산수유 축제를 하곤 하는데 10년쯤 전인가 마을의 나지막한 산 위에 노란색 꽃 모양의 커다란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얼른 대충 보아하니 이것이 무슨 꽃 모양인지 알 수가 없었다. 노란 산수유 사진 촬영은 개울과 돌담이 어우러진 형태로 함께 해야 아름답기에 그때까지 접사(근접) 촬영을 하지 않았었다. 어느 해 접사 렌즈로 갈아 끼우고 산수유를 찍어보았더니 바로 그 나지막한 산 위에 커다란 조형물과 형태가 비슷함을 알았다. 이렇듯 산수유는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서 감상하는 형태가 아니라 무리 지어 노랗게 피어 아름답다. 김훈 작가는 산수유를 그렇게 디테일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할 줄 아는 감성을 가진 작가다.
작가는 ‘자전거 여행 1.2편’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몸으로 체험하고 글을 써서 책을 펴냈다. 자전거를 타고 며칠간을 다니는 일은 육체적으로 엄청난 에너지의 소모를 필요로 한다. 그는 아침부터 줄곧 자전거를 타며 글감을 마주하고 대상을 관찰하고 거기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녔다. 밤에는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와 그날의 일과를 정리하고 글을 썼을 것이다.
자전거를 하루 종일 타는 일은 정말 힘이 든다. 나도 한때는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탔다. 보라매 공원에서 출발하여 도림천 자전거길을 이용하면 위로는 전철 서울 순환 2호선이 다니는 대림역을 지나 신도림역으로 이어진다. 신도림역을 지나 도림천 보다는 더 넓은 안양천과 합류하여 목동을 지나 죽 달리면 한강과 마주하게 된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양화대교와 여의도와 한강대교로 이어진다. 여기서 계속 달리면 한남대교를 지나 성수대교와 함께 올림픽대로와 함께 죽 나가게 된다. 미사리를 지나 팔당대교를 건너면 양평으로 자전거길이 이어지며 부산까지 내리 갈 수 있는 국토 종주 자전거길이다. 그러나 나는 안양천과 한강 합류 지점에서 주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는 자전거길을 선호하였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가양대교와 방화대교를 지나 조금 더 달리면 김포와 인천을 잇는 경인아라뱃길이 시작되는 김포터미널이 나온다. 보통은 출근 준비도 하여야 하기에 여기에서 자전거를 돌려 다시 왔던 길로 보라매 공원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숨이 차고 다리가 뻣뻣했다.
주말에는 김포 터미널에서 내쳐 아라뱃길을 달려 인천 터미널까지 다녀오곤 했는데 보통 4~5시간의 힘든 자전거 운행이 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 해 추석 연휴에 더 늙고 힘이 빠지기 전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3일을 계획하고 국토 자전거 종주길을 아들과 함께 도전하기로 결심하였다.
첫째 날 새벽어둠을 뚫고 달린 부자의 자전거는 한강 자전거길을 달리고 달려서 어두워져 충청도 수안보 온천에 도착하였다. 어찌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땀에 절은 몸을 씻고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빠듯한 일정으로 인해 피곤한 몸을 억지로 깨어 일어났다. 첫날은 남한강 자전거길로서 평탄한 길로만 달려서 왔는데 문경으로 넘어가는 새재 자전거길은 처음으로 만나는 가파른 고갯길이다. 도저히 힘에 부쳐 자전거를 타고 넘지 못하고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새재길을 올라가야만 했었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 힘들고 지친 다리와 허리를 내리막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쌩하고 달리는 기분은 타 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다. 문경을 지나서부터는 이제 가느다랗지만 낙동강 자전거길이 나타난다. 나는 낙동강이 그렇게 긴 강인지를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거의 꼬박 이틀을 낙동강과 함께 땀을 흘리며 달렸다. 이틀째 밤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이다. 숙소를 잡고 가까이에 고깃집이 있어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체력을 보충하였다. 마지막 세 번째 날 종착지 부산을 향해 지치고 힘이 들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 국토 종주를 하며 느낀 가장 힘이 드는 점은 땡볕에 너무 덥다는 거다. 땀을 많이 흘리니 생수 대형 2리터를 사서 둘이 마셔도 금방 바닥이 드러난다. 열심히 자전거를 달려 부산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서울로 가는 버스 시간이 다소 남아 근처 식당에 가서 부산의 명물 돼지국밥을 한 사발씩 먹었다.
자전거를 고속버스 짐칸에 싣고 좌석에 앉는 순간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어느새 서울 반포 고속터미널에 버스는 도착해 있다. 추석 명절로 인해 추가 배치된 심야 고속버스는 3일간을 자전거로 꼬박 달려 내려간 우리를 5시간 만에 다시 서울로 데려다 놓았다.
힘은 들고 어려운 여정이었지만 참으로 잘할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에 대한 글을 쓰다 나의 자전거 여행으로 글이 흘러가버렸다. 나는 요즈음은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새로 이사한 나의 아파트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자전거 도로가 없다. 부산과 함께 한 나의 자전거는 아파트 자전거 거치대에 먼지가 쌓인 채로 놓여있다. 빵빵했던 타이어는 바람이 빠져있다. 자물쇠를 잠그지 않고 놔두었는데도 아무도 집어 가지 않는다. 나의 바람 빠지고 녹슨 자전거를 보면 나는 괜히 슬프다.
Tuesday, September 30th.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