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그리고 가을

릴케 그리고 윤동주와 함께하는....

by James Kim






“가을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 시계 위에 던져 주시고,

들판에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명해 주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나날을 베풀어 주소서.

열매들이 무르익도록 재촉해 주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감미로움이 깃들이게 해 주소서.


지금 집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오래오래 그러할 것입니다.

깨어서, 책을 읽고, 길고 긴 편지를 쓰고

나뭇잎이 굴러갈 때면, 불안스레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소요할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


10월이 왔습니다.

이번 10월은 다른 해의 10월과는 다른 느낌이 납니다. 지난여름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날’의 시작처럼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조금의 자비도 없이 무자비하게 내리비추었으며 뜨거운 열기가 밤까지 지속되어 참으로 긴 열대야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농촌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땡볕에 일하다 쓰러지고, 공사 현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더위를 먹고 탈진하여 병원으로 실려 가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요즈음 농촌의 농부들은 90% 이상이 노인들입니다. 다리에 힘이 없고 늙어 무디어진 허리는 휘었습니다. 그분들은 늙음을 부정합니다. 본인들은 늘 한결같이 같은 일을 해왔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일을 나갑니다. 세월은 그들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알지 못하게 망가뜨려 놓습니다. 무릎 관절은 녹슬어 삐꺽거리고 허리의 척추는 속이 비어있습니다. 강했던 허벅지의 근육은 녹아내려 흐느적거리고 곧은 어깨는 허물어져 갑니다. 성근 머리숱은 드문드문 벗어지고 이마에는 굵은 주름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손마디는 굵어지고 검버섯이 돋아나서 손주들은 선뜻 할아버지 할머니 손잡기를 꺼려합니다.

남아있는 힘을 모아 씨를 뿌리고 싹이 나오면 물을 주며 잡초를 제거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이제껏 이들이 해 온 일이고 익숙한 일입니다. 이들은 반나절에 했던 일이 점차로 한나절이 걸리고 일의 작업속도가 서서히 늦어질 때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이들은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세월의 두께가 그들을 둔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쉬어야 합니다. 그러나 농촌의 노인들은 결코 가만히 앉아 밭에서 자라는 잡초를 방관하지 못합니다. 때가 되면 해야 될 일을 정확히 찾아서 해냅니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의 땡볕에 80대 노인이 쓰러집니다. 지금 농촌에는 사람이 드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으면 쓰러진 노인은 방치되어 큰 화를 당합니다. 지난여름 많은 노인이 들판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그 뜨겁고 치열했던 늙은 농부의 들판에도 가을이 왔습니다.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어옵니다. 농촌의 그들이 땀 흘리며 키웠던 농산물이 서서히 익어갑니다.

가을 들판에 나가보면 황금벼들이 가지런히 머리를 숙이고 수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포도송이들은 마지막 감미로움이 스며들도록 햇빛을 받고 있습니다. 사과는 빨갛게 얼굴을 물들이며 속을 알차게 채워 나가고 있습니다. 밤송이는 속에서 밀고 나온 알밤의 크기에 지레 놀라 입이 벌어집니다. 감나무의 열린 감이 풍성해짐에 무게에 겨워 가지가 밑으로 처집니다.


가을은 분명 축복의 계절입니다. 땀 흘린 농부에게 결실을 허용하여 추수하게 하는 감사의 시기입니다. 지난여름을 살아남은 늙은 농부는 추수한 농산물을 수매하고 봄에 빛 진 씨앗과 모종값을 갚고 여름에 외상으로 가져온 농약과 비료 대금을 갚아야 합니다. 이제 남은 돈 얼마는 꽁꽁 싸매어두고 있다 추석에 내려오는 손주들에게 용돈으로 집어줄 것입니다. 수매하기 전에 미리 남겨놓은 가을걷이는 추석 쇠고 올라가는 자식들의 차량 트렁크에 바리바리 집어넣어서 보낼 것입니다. 그 노인이 손자들에게 주는 용돈은 그들의 여름철 땀을 모은 돈이고, 자식들에게 주는 농산물은 지난여름 혹독한 더위를 이겨낸 부모의 거친 숨결입니다.


농촌의 노인들은 오랜만에 만난 자녀들과 또 그의 아이들인 손주들과 함께한 만남의 시간은 그들에게는 참 짧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함께 와서 즐거운 시간은 그들이 가고 나면 허전한 시간으로 남습니다.

노인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 남고 젊은이들은 다시 그들의 거주지로 떠납니다. 이제 찬바람만이 남아있는 그들을 스치며 지나갈 것입니다.


릴케의 ‘가을날’ 마지막 연은 연약한 노인들의 심정을 여실히 읊조립니다.

‘지금 집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집을 지을 수 없는 이유는 더 이상 집을 지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은 생은 뭔가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마무리 정리를 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오래오래 그러할 것입니다.’

지금 홀로인 사람은 더 이상 함께 할 사람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아있는 삶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뭔가를 하기보다는 남아있는 사람들과의 용서와 화해를 통한 매듭을 푸는 삶이어야 합니다.

‘깨어서, 책을 읽고, 길고 긴 편지를 쓰고 나뭇잎이 굴러갈 때면, 불안스레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소요할 것입니다.’

노인들은 깊은 밤에 문득 잠에서 깨어나 무연히 앉아 생각에 잠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다 깨어나서 하는 생각은 희망적이고 즐거운 생각보다 후회스럽고 걱정스러운 생각이 많습니다. 이럴 때는 릴케를 따라 책을 읽어보세요. 그리고 긴 편지나 글을 써 보세요. 그대의 나이 든 인생이 그리 슬프지만은 않았다고 , 그대의 살아온 삶이 그리 하찮은 것만은 아니었다고 푸념의 글이나 변명의 글이라도 꼭 써 보세요.


그리고 찬 바람이 불어서 나뭇잎이 굴러갈 때면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걸어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좀 쓸쓸하면 어떻습니까? 좀 고독하면 어떻습니까? 인생의 본질은 고독이며, 고독이 오히려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내면을 성장시키는 긍정적인 힘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세요.


쇼펜하우어는 “사람은 혼자 있을 때만 진정으로 자기 자신일 수 있다. 그리고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자유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10월이 오고, 가을이 오고, 추석이 다가옵니다.

가을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때입니다.

나 자신의 모습 자화상(自畵像)은 어떤 모습일까요?



자화상(自畵像)


- 윤 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Thursday, October 2nd.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