愼獨(신독)하는 삶

혼자일 때 고결한 사람

by James Kim





“신독 (愼獨)”

남이 보고 있지 않는 홀로 있을 때도

바른 자세를 고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독이고

바로 이러한 신독이 곧 성의(誠意)이다.

(愼 삼갈 신, 獨 홀로 독)


- [대학]과 [중용]에서 유래


남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의로운 일이나 모범적인 착한 일을 행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의눈을 의식하고 나의 언행을 조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홀로 있는 그곳에서 스스로 언행을 삼가고 바른 몸가짐을 하는 모범적인 태도를 갖추는 것은 쉽지 않다.


“군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삼가고, 나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두려워한다. ”라고 중용(中庸)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즉 아무도 있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있을 때도 스스로 삼간다는 뜻이다. 개인 수신(修身)의 최고 단계를 말한다.

이것이 ‘신독(愼獨)’이다.


조선시대의 대쪽 같은 절개를 가진 학자나 선비들은 특히나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오히려 혼자 있을 때 나 스스로를 정갈히 하며 남을 비방하지 아니하고 벼슬에 연연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들은 스스로를 엄격히 다스리며 남에게는 관용을 베푸는 ‘내유외강(內柔外剛)’을 실천하였다.

겉으로는 순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자신의 내면은 굳건한 의지와 강한 정신력으로 단련시키는 외유내강을 실천한 우리 조선의 학자나 선비들은 일찍이 신독을 실천한 선배들이었다.


그들은 ‘군자신기독야(君子愼其獨也) - 군자는 홀로 있을 때 가장 신중하고 조심한다.’를 생활의 원칙으로 삼고 언행일치를 삼아나갔다.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을 세워 후학들을 가르침에 대학과 중용의 의미를 담고 신독 사상을 평생 강조한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나는 지난번 안동의 도산서원을 방문하고 서원의 역사와 건물에도 마음이 갔지만 가장 의미 깊은 부분의 하나가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제자들에게 했다고 한 말이 가슴에 남아 있다.

그가 죽음 직전에 그의 사랑하는 제자에게 한 말은 ‘임금께 충성하고 나라를 바로 세워라’도 아니고 ‘열심히 학문을 닦아 벼슬에 나가라’도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한다.

“매화 화분에 물 줘라!”


단순하게 들릴 수 있으나 담백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욕심을 버린 경지에 오른 이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어찌 보면 신독은 고독한 수양을 넘어서는 고통스러운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신독은 고독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독 속에서 자기 주체를 심화하고 도덕적 성장을 이루는 성숙한 인간화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찍이 시인 윤동주는 그의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여는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신독을 얘기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삶인 것은 확실하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로 훌륭한 자기 수신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 마음은 자신의 수양이 부족함을 늘 느끼고 거기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책하며 반성하는 자세가 아니겠는가?


작가 정유정은 자신의 책 어디엔가 다음과 같은 글을 써놓아 나는 그 글을 필사해 두었다. 그 글의 의미 속에서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 신독을 느낄 수 있었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언젠가는 반드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어떤 순간이 온다.

운명이 명령한 순간이자 사랑하는 이와 살아온 세상,

내 삶의 유일무이한 존재인 나 자신과 작별해야 하는 순간이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치열하게 사랑하기를

온 힘을 다해 살아가기를......”


나는 신독은 겸손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겸손(Humility)은 진정한 자신감의 발로이다. 진정한 자신감은 자신감으로 위장한 겉모습이나 거짓된 허세, 또는 최악인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자신의 실력과 품성에 대한 진정한 인식은 자존심이 아닌 겸손‘humility’에서 나온다.

오만‘arrogance’은 자신의 강점만 보면서 자신의 약점과 남들의 강점은 무시하게 만들어 결국 큰 실수를 저지르게 한다.

“반면에 겸손은 우리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 줌으로써 보완할 수 있게 도와준다. 겸손이야말로 우리가 자신감‘self-confidence’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다.”라고 John L. Hennessy는 그의 책 ‘Leading Matters’에서 말한다.


신독은 힘들고 어렵지만 자기 자신을 확실히 올곧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 하여 줄 것이다.

신독을 완벽히 실천하기가 어렵고 힘이 든다면 쉬운 것부터 하나씩 따라 하면 된다.

이노베이터‘The Innovators’를 집필하고 타임지 편집장을 지낸 미국의 언론인 출신 작가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은 따라 하기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쓰는 가면‘mask’이 곧 우리 자신이 된다.

다시 말해 어떤 덕목을 제대로 익히기가 힘들 경우,

그런 시늉을 해 보이기만 해도 도움이 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차 내면화‘internalization’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페르소나‘Persona’와 페르소나 증후군‘Persona Syndrome’을 살펴보면 우리는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이 건강한 페르소나에 대해 말했듯 인간이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가면을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했다.

페르소나는 사회생활을 위한 도구이며 진정한 자아와 분리하여 건강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내가 쓰는 가면이 곧 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겉모습과 역할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처음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감추는 가면을 쓰는 행위인 페르소나가 서서히 자신을 규정하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시간이 지나고 반복이 거듭되며 페르소나는 가면과 나 사이의 구분을 점차 사라지게 하면서 처음에는 따라 했던 좋은 행동이 나의 행동이 된다.


예를 들어 집에서는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공부를 여러 사람이 공부하고 있는 도서관에서는 집중되는 현상도 일종의 페르소나를 통한 순기능이다.

집에서 글을 쓸 때 오래 집중해서 쓰지 못하는 작가가 공개적인 카페에 랩탑을 들고 가 몇 시간을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 또한 페르소나 신드롬에 해당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본래 모방을 통해 현실을 재현하려는 본성이 있으며 이것이 예술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라고 고대 그리스 시절에 이미 말한 바 있다.


어떤 학자는 세상에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 없으며, 기존의 아이디어를 융합하고 발전시켜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라고 하였다.


오늘부터라도 좋은 습관을 따라 하는 것, 그것이 당신의 습관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마라. 그것이 너의 신독(愼獨)이 될 수 있으며 고결하고 모범적인 진정한 성공의 길인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이 될 것이다.


보기에 아름다운 것은 눈치 보지 말고 기꺼이 따라 해라.

보기에 역겨운 행동은 눈을 씻고 귀를 닫아 보지도 듣지도 말고 멀리하라!

이것이 신독이며 당신 자신이다.


긴 추석 연휴의 첫날이 저물어 가고 있다.

모두가 소외됨과 외로움 없이 행복한 추석 연휴가 되었으면 한다.


Friday, October 3rd.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