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그 즐거움....
“간단한 산책이라 하더라도
걷기는 오늘날 우리네 사회의 성급하고 초조한 생활을
헝클어놓는 온갖 근심 걱정들을 잠시 멈추게 해 준다.
두 발로 걷다 보면 자신에 대한 감각,
사물의 떨림들이 되살아나고 쳇바퀴 도는 듯한 사회생활에
가리고 지워져 있던 가치의 척도가 회복된다.”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 [걷기 예찬 Éloge de la marche]에서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사회학 교수이다. 그의 책 걷기 예찬(Éloge de la marche)은 걷기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나 체력을 단련하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사유하고 존재하는 방식으로 그 행위를 바라본다. 걷기를 통해 인간은 자신과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차분한 사고를 통해 철학적·심리적·사회적 의미를 지닌 행위로 표현하고 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걷기를 실천하고 있다. 주로 건강이나 체력단련을 위해서 걷기를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공원에서 걷는 사람, 동네 놀이터에서 걷는 사람, 학교 운동장이나 동네 어귀를 걷는 사람도 많다. 맨발 걷기가 좋다는 방송이 매스컴 전파를 탄 이후에는 맨발로 걷는 사람들도 부쩍 많아졌다.
지역의 체력단련을 위한 작은 공원 모서리에 요즘 황토 맨발 걷기를 위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공원 한쪽으로 레인을 만들어 황토를 붓고 다지는 공사가 한창이다. 그 옆에는 맨발 걷기를 한 후에 발을 씻을 수 있도록 수도시설도 같이 만들고 있다.
스니커즈를 신고 걷던 맨발로 걷던 걷기를 시작하는 사람이 점차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걷는 사람의 면면을 살짝 살펴보면 주로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주로 걷기에 열중이시다. 가끔 젊은 사람도 보이지만 주로 나이대가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절대적이다. 건강을 염려할 나이가 되고 운동할 시간이 충분한 이유도 있을 테지만 어쨌든 나이 든 분들이 많이 보인다.
이렇듯 건강이나 신체 단련을 위해 걷기를 실천하는 분도 많지만 산책을 위한 걷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책의 즐거움과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서 호젓한 길을 천천히 걷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 아침에 새벽빛 먼동이 트는 모습을 보고 이슬을 헤치며 걷는 아침에 산책하는 사람이 있다. 해가 저물어 가는 저녁 어스름에 호숫가에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겨 걷는 사람도 있다.
좁다란 산속 오솔길을 걷다 만나는 피어있는 작은 들꽃을 바라보는 일은 평화롭다. 조용한 호숫가 둘레를 걷다 물오리 가족이 유유히 줄지어 헤엄치는 모습을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걷다 바라보는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렇듯 무념의 상태에서 천천히 느끼면서 걷는 것, 지식의 유무와 재산의 있고 없음을 떠나 한 인간이 조용히 자신의 걸음을 걷는 행위는 오롯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유이며 치유의 걸음이다.
걷기의 아름다움은 고요 속에서 걷는 동안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문득 생각이 나는 수가 있으며, 내가 살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자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상과 현실 속에서 느꼈던 괴리를 생각하는 순간이 될 수도 있으며 까마득한 어린 시절이 생각나 혼자서 웃거나 찡그릴 수도 있다.
오롯이 나 자신의 세계로 몰입하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돌아보는 차분한 나의 관찰자 시점이 된다. 내가 세상을 온전히 살고 있는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다니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자성의 시간이 된다.
역대로 철학자와 예술가들은 산책을 하며 예술혼을 키워왔다.
‘칸트의 산책’이란 말을 들어보지 않았는가? 그는 늘 규칙적이고 정확한 시간에 일정한 시간 동안 산책하는 습관을 가지고 사유와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산책 시간이 얼마나 정확하고 규칙적인지 그 지역 사람들은 그가 산책하는 시간을 보고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고 한다.
베토벤은 뭔가 악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뒷짐을 지고 숲 속을 산책하며 자연으로부터 위로를 얻고 아이디어를 부여받았다 한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말한다.
“숲 안에 있으면 기쁘고 행복하다.
사람은 속일 때가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은 그의 책 걷기 예찬(Éloge de la marche)을 시작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프랑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투르키예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1099일을 12,000km를 걸어서 실크로드 횡단을 하고 ‘나는 걷는다’라는 제목으로 두툼한 책 3권을 썼다. 나는 이 3권의 책을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꾸밈과 과장 없이 그대로의 걸어가는 과정을 묵묵히 써나간 그의 책을 읽으며 대리만족과 행복을 느꼈었다.
한동안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마치 제주도 올레길을 가듯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이 다녀왔고 많은 글을 쓴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에도 제주도 올레길을 비롯한 많은 산책과 걷기를 위한 길이 조성되어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고 있다.
내륙에서 바다를 끼고 아름다운 해변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해파랑길, 남파랑길 그리고 서해랑길이 있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하여 강원도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동해안의 주요 해수욕장과 일출명소와 관동팔경을 두루 거치는 아름다운 해변길로 50개 코스에 길이는 총연장 750km에 이른다.
남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하여 해남 땅끝탑까지 한려수도와 다도해의 섬들을 지나며 남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낭만의 길로서 90개 코스에 총연장 1,470km에 이른다.
그리고 서해랑길은 해남 땅끝탑에서 시작하여 인천 강화 평화전망대까지 해지는 바다와 갯벌 속 삶의 모습들을 만나는 생태와 역사의 길로서 109개 코스에 총연장 1,800km에 이른다.
이 외에도 지리산 둘레길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여러 유명산에는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이 모든 길을 내 생전에 다 가서 볼 수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가능한 많은 길들을 걸어보고 싶다. 그 길을 걸으며 오롯이 내가 살아있다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껴 보고 싶다.
어느 해 가을날에 걸었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넘어가는 문경새재의 낙엽 지는 옛길이 그립다.
다산 초당에서 백련사를 잇는 만덕산 산길을 걷는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의 두런두런 담소하는 소리가 들리고 점차로 흐려지는 뒷모습이 보인다.
문득 새소리가 들린다. 아침이 왔다. 산책을 가야겠다.
Sunday, October 5th.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