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배(Golden Boat)
“나의 님이여, 당신이 어떻게 노래하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저 놀라움 속에
말을 잊은 채 귀 기울일 뿐.
당신의 음악이 빛이 되어 세상을 밝힙니다.
당신의 음악이 생명의 숨결이 되어 하늘에서 하늘로 퍼져 갑니다.
당신 음악이 성스러운 물결이 되어
돌처럼 단단한 장애물을 부수고 넘쳐흐릅니다.
내 가슴은 당신과 함께 노래하기를 갈망하지만,
목소리를 내려고 헛되이 노력할 뿐.
말을 하지만 내 말은 노래가 되지 못하고,
나는 당황하여 눈물만 흘립니다.
아, 나의 님이여, 당신은 내 가슴을 사로잡았습니다.
당신이 연주하는 끝없는 음악의 그물로.”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기탄잘리』: 신께 바치는 송가 3편에서
[• '기트 git' : 노래 • '안잘리 anjali' : 두 손 모아 받친다는 의미]
타고르의 기탄잘리 3편의 이 시는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나에게 보내주었다. 그는 지금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충청도 아산에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텃밭을 가꾸며 유유자적 저물어가는 저녁의 햇살을 즐기면서 아내와 함께 행복을 꾸리며 살고 있다. 그의 아내도 같은 초등학교 동창이라 동창회도 같이 나오고 하는데 나는 어렸을 때 그녀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친구인 나의 동무는 이번 가을 동창회에 나와서 나와 많은 얘기는 나누지 못하였으나 그가 지금도 철학을 사랑하고 시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여 나는 마치 잃어버린 친구를 새로 찾기나 하듯 반가웠다.
보통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책을 찾아 읽거나 시를 암송하는 사람은 거의 보기 힘들다. 대개가 취미로 등산이나 낚시를 즐겨하고 본인의 건강을 지나치게 염려하여 몸에 좋다는 운동을 주로 하고 음식도 몸에 좋은 것만 가려서 먹는 경향이 있다.
또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여 교회나 성당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기독교인이거나 사찰을 찾아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는 불교 신도 생활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친구는 은퇴 후의 삶을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철학책을 찾아 읽거나 시를 즐겨 읽는다 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어떤 시인을 좋아하는지 통속적이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기탄잘리’를 요즈음 감명 깊게 읽는다 하여 그 반가움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기탄잘리 3편을 나의 휴대폰에 카톡으로 보내왔다.
나는 타고르를 인도의 뛰어난 시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우리나라를 해 뜨는 동방예의지국으로 지칭한 시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그의 시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시인이자 산문가인 곽재구가 쓴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이라는 산문집에서 “황금빛 배(Golden Boat)”를 읽고 난 후라 할 수 있다.
나는 “황금빛 배”를 읽고 그 시에서 표현하는 장면의 모습과 인물의 감정까지도 생생히 상상되어 마치 내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내가 가진 나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건네주고 떠나가는 연인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아픔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타고르가 시라는 언어를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움직이는 영혼이 아름다운 시인이라는 느낌이 들어 그 이후로 그의 시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 내가 타고르를 사랑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 “황금빛 배(Golden Boat)”를 읽어 보기 바란다.
먹구름 울고 비가 쏟아집니다
슬프고 외롭게 나는 강둑에 앉아 있습니다
추수는 끝나가고 볏단들은 비에 젖습니다
강물이 쿨럭쿨럭 흐릅니다
벼를 베며 나는 비에 젖습니다
작은 논에 나 혼자 서 있습니다
강물은 소용돌이치며 흐릅니다
먼 둑길 위의 나무들은 외로운 잉크 얼룩 같은
그늘을 사람의 마을에 드리웁니다
작은 논에 나 혼자 서 있습니다
배 위에 서서 노래를 부르며 이쪽으로 오는 사람은 누구인지요?
오, 내가 아는 여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돛을 활짝 펴고 그이는 앞을 바라보는데
물살을 가르며 배는 다가옵니다
전에 본 그 얼굴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뜁니다
그리운 이여 어디로 가는 길인가요?
여기 내 논가에 닻을 내리고 잠시 머무세요
당신 마음 가는 데로 그대로 가도 좋아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게로 와서 당신의 미소를 보여줘요
떠날 때 내 황금빛 벼들을 다 가져가세요
다 실으세요 모두 실어가세요
더 있느냐고요? 이게 다예요 모두 실었지요
내가 이 논에서 온 정성을 바쳐 일한 모두를
차곡차곡 다 쌓아 보내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이여 이제 저도 데려가세요 제발
배가 너무 작아 태울 곳이 없다고 당신은 말하는군요
내 모든 황금빛 영혼을 다 실은 탓입니다
먹구름 쿨럭이는 하늘
텅 빈 벼논 가에 나 혼자 서 있습니다
황금빛 배는 가고 빗속에서 나 혼자 서 있습니다.
나는 어느 수업 시간에 잠시 휴식하는 사이 틈을 내어 이 시를 학생들에게 읽어주고 느낌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한 남학생이 대뜸 한다는 말이 “나쁜 x이에요!”라고 말해서 모두 크게 웃은 기억이 난다.
타고르는 가르치는 사람을 위한 제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교사의 중요한 사명은 모든 의미를 밝혀 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의 문을 두드려 주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치열한 성적을 다루는 수행평가와 대학입시의 결과에만 연연하지 않고 가끔은 시의 아름다움과 청년의 순수함을 조금이라도 더 가졌으면 하는 의미를 실어 시를 읽어준 것이었다.
아무튼 타고르의 시 ‘황금빛 배’는 시를 읽고 나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황금빛 배에 실어 보내고 빗속에서 쓸쓸히 홀로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지 않는가?
나도 이제 이 시를 나의 초등학교 옛 친구에게 보내려 한다.
내가 그의 시를 받고 기뻤듯이 나의 친구도 이 글을 읽고 기뻤으면 한다.
오늘 걸어본 관악산의 단풍은 정말 아름다웠다.
붉은 단풍나무 잎들과 노란 은행나무 잎들 사이로 적갈색의 느티나무 잎들이 앞다투어 물들어 가면서 산을 치장하고 있었다.
더 늦어 볼 수 없어지기 전에 눈을 들어 다정한 마음으로 주위를 살펴보기 바란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을 보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타고르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대자연은 생명의 샘이다”라고 말했다.
Saturday, November 8th.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