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雪國)

너무나 서정적인 이야기....

by James Kim


“사방의 눈 얼어붙는 소리가 땅속 깊숙이 울릴 듯한 매서운 밤 풍경이었다.

달은 없었다.

거짓말처럼 많은 별은,

올려다보노라니 허무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별무리가 바로 눈앞에 가득 차면서 하늘은 마침내 먼 밤의 색깔로 깊어졌다.

서로 중첩된 국경의 산들은 이제 거의 분간할 수가 없게 되고 대신 저마다의 두께를 잿빛으로 그리며 별 가득한 하늘 한 자락에 무게를 드리우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맑고 차분한 조화를 이루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에서


설국(雪國)의 첫 문장은 이미 나의 글 ‘첫 문장의 강렬함’에서 소개하였듯이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 거의 모두가 알고 있는 명문으로 이처럼 시작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요즈음 나는 옛적 읽었던 고전을 다시 읽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책꽂이에서 오래된 고전을 꺼내 창문을 열고 묵은 먼지를 털어내면 책 속에 잠들어 있는 이야기들이 아우성치며 깨어난다. 내가 읽으면서 밑줄 그은 부분이 희미해져 있기도 하고 책갈피가 끼어져 있는 책도 있다. 밑줄이 그어져 있는 부분을 다시 찬찬히 읽으며 왜 그 부분에 줄을 쳤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읽었던 책 다시 읽기를 하며 느낀 점은 어떤 책의 어떤 부분은 옛적 내가 읽었던 생각이 선명하게 도드라지나, 대부분 새로운 책을 읽듯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음을 느낀다. 나는 이제까지의 독서를 함에 있어 정독(精讀)하기보다는 적당히 이해하고 페이지를 넘기는 다독(多讀)을 하였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도 갖게 된다.


가을이 되면서 다시 꺼내어 읽기 시작한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2.3’인데 방대한 분량이 지루해 잠시 그 옆에 꽂혀 있는 얇은 책 ‘설국’을 다시 읽으며 나의 독서 스타일에 다소 회의감이 들었다. 설국의 내용이 온천으로 여행을 온 중년의 남자주인공이 눈의 고장에서 일하는 게이샤와의 일탈에 관한 내용만 생각이 나고 나머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서 과연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일본소설을 읽고 처음으로 ‘재미있구나!’ 생각한 책은 여류작가인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으로 기억한다. 이 소설은 1964년 아사히 신문에서 주최한 1천만 엔 현상 소설 공모전에서 최우수작으로 당선된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비롯하여 전체적인 일본의 소설은 차분하고 정적이며 이야기 전개가 큰 임팩트 없이 잔잔히 이어진다. 자연과 사물에 대한 섬세한 묘사감과, 상징적이며 내용을 암시하고 있는 주제 전달이 조용히 독자의 관심을 끄는 스타일로 전개되는 것이 일본 문학의 특징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남자주인공으로 나오는 여행객 ‘시마무라’가 니카타현의 한적한 온천에서 만난 초보 게이샤인 ‘고마코’를 처음 본 소감을 다음처럼 표현했다.

“여자의 인상은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했다. 발가락 뒤 오목한 곳까지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여름 산들을 둘러보아 온 자신의 눈 때문인가 하고 시마무라가 의심했을 정도였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에게 다른 게이샤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신은 그녀와 친구 사이로 남고 싶으니까 당신에겐 요구하지 않는 거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작가는 시마무라의 심정을 이렇게 기록했다. ‘애당초 오직 그는 이 여자를 원하고 있었음에도 여느 때처럼 굳이 먼 길을 빙빙 돌았다고 분명히 깨닫자, 그는 자신이 싫어지는 한편 여자가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삼나무숲 그늘에서 그를 부른 이후, 여자는 어딘가 탁 트인 듯 서늘한 모습이었다.’


그 남자와 그 여자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표현하는 내용으로 가득한 이 책을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으로 선정하며 ‘자연과 인간 운명에 내재하는 존재의 유한한 아름다움을 우수 어린 회화적 언어로 묘사했다.라고 썼다.


“사방의 눈 얼어붙는 소리가 땅속 깊숙이 울릴 듯한 매서운 밤 풍경이었다.

달은 없었다. 거짓말처럼 많은 별은, 올려다보노라니 허무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일본 소설의 특징인 자연과 사물에 대한 섬세한 묘사감과, 상징적이며 내용을 암시하고 있는 주제 전달이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이 소설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 책 처음에 나오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요코’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높은 울림이 고스란히 밤의 눈을 통해 메아리쳐 오는 듯했다고 시마무라는 회상하며 특히 처녀의 얼굴 한가운데 야산의 등불이 켜졌을 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고 기차에서 본 첫인상을 적고 있다.


시마무라와 두 여자 ‘고마코’와 ‘요코’는 묘한 삼각관계를 형성하며 독자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넘어 형언키 어려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고마코는 시마무라에게 따지고 든다.


“당신은 절 좋은 여자라고 하셨죠? 떠날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신 거예요?” 시마무라는 고마코가 한 말을 떠올렸다.

“울었어요. 집에 돌아가서도 울었어요. 헤어지는 게 무서워요. 하지만 어서 가버려요. 그 말 듣고 울었던 걸 잊진 않을 테니까”


일본의 조용한 작은 온천마을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아픔을 잔잔히 표현한 소설 설국은 뚜렷한 사건 전개나 스토리 변환이 급격히 일어나지 않는다.

작가에게 있어 여행은 작품의 모티브를 제공받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창작의 필수 코스이다.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내 소설의 대부분은 여행지에서 써졌다. 풍경은 내게 창작을 위한 힌트를 줄 뿐 아니라, 통일된 기분을 선사해 준다. 혼자만의 여행은 모든 점에서 내 창작의 집이다.”라고 그는 쓴 바 있다.


여행자는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기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여행자를 향한 고마코의 열정은 한층 애절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게이샤 고마코의 시마무라에 대한 심적인 갈등 변화가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감정적으로 표출되어 책을 읽는 내내 인간적인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서사적이지 않으며 서정적인 소설 ‘설국’은 따뜻한 고타스에 발을 넣고 추운 겨울날 또 한 번 천천히 읽고 싶은 책이다.


갑자기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요코를 안고 나오며 고마코는 외친다. “이 애가 미쳐요. 미쳐요”

정신없이 울부짖는 고마코에게 다가가려다 시마무라는 사내들에 떼밀려 휘청거린다.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곧 더 찬 바람이 불면 단풍도 떨어집니다.

한 번 더 고개 들어 아름다움을 눈에 새겨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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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November 6th.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