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맞으며....

어설프지만 아름답기를

by James Kim





“11 월”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 나태주


11월의 첫 일요일 아침입니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11월은 애매한 부분이 참 많은 달입니다.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늦어 버린 것 같고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빠른 듯합니다.

가을옷을 입기에는 조금 가벼운 듯하고 겨울의 두꺼운 옷은 아직 부담스럽습니다.

기온도 애매모호하여 추운듯하여 다소 두툼한 옷을 입고 나가면 한낮의 따사로운 햇빛은 무거운 옷을 거추장스러워합니다. 그래서 가볍게 입고 나가면 찬바람에 몸이 움츠러듭니다.


어제는 좀 멀리 떨어진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 외곽길을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걸어보았습니다. 나뭇잎들이 하나둘씩 물들어 가고 부는 바람에 시든 잎들이 떨어져 길 위를 뒹굽니다. 플라타너스의 큰 잎들이 바람개비를 돌며 길 위에 떨어져 내려앉습니다. 밟으면 버석거리는 가을이 깨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젊은 청년 시각 장애인이 도우미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눈으로 붉게 물든 단풍을 보며 가을을 느끼는데 저 청년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가을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공원 옆 미술관 앞뜰 큰 느티나무가 노란색이 섞인 갈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나무 아래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소풍 나온 여성들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합니다. 나무의 단풍이 나오도록 찍어달래서 포트레이트 모드로 2장을 촬영하고 다시 랜드 스케이프 모드로 2장을 정성껏 예쁘게 나오도록 촬영해 주었습니다. 한 여성이 고맙다며 연노란색 귤 하나를 건넵니다. 가을이 묻어나는 귤이었지만 고개 숙여 정중히 사양하고 불이 붙듯 붉은색이 가득한 화살나무를 보러 갑니다.


11월의 가을은 버석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붉게 물든 단풍을 보며 걷기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은 계절입니다.

그러나 11월은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11월은 한 해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달입니다. 그러나 뭔가 어정쩡한 달입니다. 끝이라고 하기에는 12월이 남아있고 뭔가 그 해에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드는 달입니다. 11월에는 어떤 특별한 명절이나 법정공휴일도 없으며 그 많은 지방의 가지가지 축제들도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12월은 완전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를 가진 종결의 의미도 있고,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그냥 들뜨기 쉬운 크리스마스가 있어 축제와 파티의 느낌이 묻어나는 달입니다.

시인은 11월을 노래하면서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요즘 장미는 11월에도 피어 있는 것을 군데군데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미는 5월의 활기차고 젊음이 뿜어내는 생생한 붉음과는 다른 장미입니다. 11월 이때까지도 꽃피어 인내하고 있는 장미는 뭔가 쓸쓸하면서도 처연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나이 든 여인네가 마지막 막내 손주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기 위해 몸치장을 정성껏 그러나 어쩐지 어설퍼 보이게 하고 마무리로 입술에 바르는 새빨간 루주의 쓸쓸함과 고독이 묻어 있습니다.


숭실대학교 중앙도서관 옆의 잔디밭에는 또 다른 가을의 고독을 노래한 시인 김현승의 시비가 놓여있습니다. 그의 시「가을의 기도」를 들어보세요.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마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이 오버랩되는 느낌이 들면서 기독교적인 아름다움과 고독이 함께함을 느낄 것입니다.


나태주 시인은 그의 시 ‘11월’의 마지막을 이리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11월은 낮이 참 빨리 지나갑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밤은 길어집니다. 긴긴 11월의 밤중에 홀로 깨어 무연히 앉아 생각하면 많은 과거가 흘러갑니다. 기뻤던 일, 슬펐던 일, 힘들었던 일, 후회되는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왜 나는 자랑스러운 과거보다 후회스러운 과거가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왜 나는 아름다운 과거보다 부끄러운 과거가 더 생각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왜 나는 가을이 남들보다 더 슬픈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루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11월을 쓸쓸하게 맞이하지 않아야겠습니다.

11월을 차분히 맞이하여 사색하며 시작하려 합니다.

내가 아는 여러분도 그리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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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2nd.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