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by James Kim



“나는 마음을 비우고 차분해져야 한다.

그러면 저 멀리 있는 환한 빛이 내 속에서도 반짝일 수 있을 것이다.

전적으로 마음을 비우고 차분해지면 내 안에서도 빛이 생겨날 것이다.

나는 모든 일에 고군분투할 필요 없다.

나는 차분해져야 한다.

나는 내면에서 반짝이는 빛이 되어야 한다.

나는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빛이 되어야 한다.”


욘 포세(Jon Fosse)

『멜랑콜리아 Melancholia』 에서


욘 포세의 『멜랑콜리아』는 19세기말 실존했던 노르웨이의 풍경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1830~1902)의 비극적 일생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Jon Fosse는 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서 노르웨이에서는 헨리크 입센 이후 최고의 극작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라 한다.

그는 노르웨이보다 해외에서 더 명성이 높은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극작가이자 소설가다. 소설로 데뷔하기는 했지만, 극작을 시작한 이후 현대 연극의 최전선을 이끄는 동시대 최고 극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현재는 주로 희곡에 집중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멜랑콜리 (Melancholy)와 멜랑콜리아 (Melancholia)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살짝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두 단어 모두 우울감을 의미하지만, 멜랑콜리는 주로 감정적 상태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며, 일상적인 우울과 연관이 된다. 반면 멜랑콜리아는 보다 철학적이고 임상적인 우울의 상태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며, 주로 병리학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멜랑콜리아 (Melancholia)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으며, '검은색'을 의미하는 멜랑(melan)과 '담즙'을 의미하는 콜리아(cholia)의 합성어로, 원래는 '흑담즙병'을 뜻했다.


나는 의학에는 별로 상식이 없어 자세히는 모르나 정신과에서 분류하는 우울증은 크게 4가지가 있는데 '주요 우울증', '양극성 장애', '기분 부전 장애', '기분 순환 장애'로 구분한다고 한다. 이 중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은 주요 우울증의 한 종류로 중증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인다.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은 기분을 조절하는 뇌 내 시스템 이상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뇌의 전두엽 기능이 저하돼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흥분에 관여하는 호르몬이 증가해 충동성이 극대화된다고 한다. 술을 마신 뒤 억제력이 떨어지고 충동성이 증가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하니 이해가 쉬울 듯하다. 판단력·집중력 등의 인지 기능 저하로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부정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고 한다. 또한 외부 스트레스나 고통보다 자신이 스스로 갖고 있는 요인에 의해 생긴다 하니 마음속의 병이 틀림없어 보인다.


흔히들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부르는데 요즘처럼 가을이 깊어지면서 찬 바람이 불 때면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가슴속에서 뭔가가 쿵 하고 떨어진다. 정말로 멜랑콜리 (Melancholy)한 느낌이 드는 요즈음이다.

과연 고독과 우울은 부정적인 견해로만 해석이 되어야 할까?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앤서니 스토(Anthony Storr)는 그의 책 ‘고독의 위로’에서 “인간의 불행은 고독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라고 말했다. 고독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타인에게 휘둘리거나 관계에 지쳐 불행을 겪게 된다는 의미를 포함한 말이라 생각한다.

인간 삶의 본질은 고통과 고독이 수반되는 것이 순리이다. 그러나 혼자가 된다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여 타인의 기분이나 평가에 휘둘려 진정한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고독은 조용히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하고 이러한 자기 성찰의 절차를 거쳐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힘이 된다.

고독은 창의성의 원천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여러 뛰어난 사람들은 고독 속에서 위대한 성취를 한 경우가 많았다. 최근 심리학에서도 고독의 가치가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유명한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도 사람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가지고 있던 페르소나(persona)를 벗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고 주장했고, ‘별이 빛나는 밤’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도 "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라고 말한 바 있다.

행복은 외부의 인간관계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고독과 우울을 통해 내면의 충만함을 찾을 때 더욱 깊어질 수 있다. 고독하고 멜랑콜리한 시간을 가지면서도 이를 활용하는 능력은 행복한 삶을 위해 중요하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고독과 멜랑콜리아가 존재하면서도 늘 소중히 간직되는 빛이 있다. 욘 포세의 글 속에서 주인공 라스가 찾아가는 빛을 살펴보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머리를 스치는 갖가지 생각 조각들은 떨쳐 버려야만 했다. 근심과 걱정거리, 심지어는 즐겁고 기쁜 생각들조차 내 머릿속에 깃들자마자 조각조각 부수어 떨쳐 버려야만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내면은 고요해질 수 있었다. 고요함이 나의 내면에 자리를 잡고 내게 신의 자비가 내리면 나는 빛 속에 들어설 수 있다. 그 빛은 뜨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기품 있고 우아하게 반짝이는 빛, 묵직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가벼운 빛, 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빛, 나는 그러한 빛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강렬한 빛은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빛을 느낄 수 없다면 내게 무슨 일이 생기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빛을 느낄 수 없다면 신의 자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의미지만, 가끔은 빛을 느낄 수 없어도 우리는 신의 자비 속에 있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p121)


멜랑콜리아에서 그림을 그리는 주인공 라스는 하숙집의 딸인 어린 헬레네를 사랑한다. 그는 혼자서 다음처럼 그녀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독백(獨白)을 한다.

“헬레네, 당신의 긴 머리카락을.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다.

헬레네, 나는 당신을 볼 수 있다. 나는 당신에게 가야 한다. 당신이 너무나 그립다. 내가 왜 이처럼 당신을 그리워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나는 온종일 당신을 그리워한다. 그리움은 마치 하늘처럼, 빛처럼 나를 맴돈다. 당신은 내 가슴속에 자리한 하늘이자 빛이다. 헬레네, 나는 이처럼 당신을 그리워한다.” (p136)


그리움이 고독이 되고 우울증이 되는 순간은 누군가를 향한 긍정적이고 관계 지향적인 감정인 ‘그리움과 사랑’이 대상과의 연결 가능성이 사라지거나 부재가 길어지면서 스스로에게 집중하게 되는 ‘고독과 우울’이라는 주체적이고 내면적인 상태로 변화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작품에서 라스가 사랑하는 헬레네를 그녀의 삼촌이 만나지 못하도록 억제하면서 라스는 점점 더 멜랑콜리아 하게 된다.
헬레네에 대한 라스의 그리움은 그녀의 삼촌의 강제적인 두 사람 관계의 단절로 인하여 외로움(loneliness)으로 연결된다. 이 외로움의 감정이 심화되어 라스는 자신의 실존에 대해 혼동을 느끼며 고독(solitude)과 우울증(melancholia)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과 고독과 우울을 느끼며 산다.

누구나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공감을 바라며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내일은 대입 수능일이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는 가슴 떨리는 긴 밤이 될 것이다.

나는 오늘 수능 마무리를 다 못 해주고 떠난 보낸 나의 고3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카톡 문자로나마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이 수능일이구나.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결과를 차분하고 담대하게 발휘해 주기 바란다.

쌤은 늘 너희들 뒤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란다.”



Wednesday, November 12th.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