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의 고독

고독과 사랑이 함께하는 죽음

by James Kim





“그 마을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진취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남자였던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마을 집들을 적절하게 배치시켜 모든 집이 같은 노고를 들여 강물을 길어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고,

더운 시각에는 어떤 집이 다른 집에 비해 햇볕이 더 많이 드는 일이 없도록 길을 섬세하게 설계했다.

사실, 마꼰도는 주민들 가운데 서른 살이 넘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행복한 마을이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백 년의 고독]에서


마르케스(Gabriel Jose Garcia Marquez)는 콜롬비아의 태생으로 1967년에 ‘백 년의 고독’이라는 대하소설을 발표하여 세계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라틴아메리카 작가로 우뚝 섬으로서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옛사랑의 마술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을 읽는다.

왜 옛사랑은 마술적이며 몽환적이고 실제 존재의 가치가 의심스러워지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단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살짝 많기도 하지만(삼국지에 비하면 약과이긴 하지만...) 길기도 하고 비슷비슷해서 굉장히 헷갈린다는 점이다.

‘백 년의 고독’을 제대로 읽으려면 등장인물과 가계도를 그려가면서 읽지 않으면 온통 다시 앞으로 다시 읽기를 반복하게 하니 조심해야 한다.

이 책은 살짝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가미하여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아내 우르슬라가 일군 한 가정의 후대 자손의 인물 가계도가 복잡하게 구사되면서 왜 제목이 ‘백 년 동안의 고독’인지 책을 읽어 나가면서 점차 이해하게 된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40명의 젊은이와 함께 원래 살던 마을을 떠나 아내와 함께 새로운 마을 ‘마콘도’를 개척하고 마을의 실질적 지도자가 된다. 그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패기 넘치는 인물로 근면하고 성실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과학적 실험과 철학의 세계에 심취하여 노년에는 미쳐서 밤나무에 묶여 하루 종일 묶인 채로 먹고 자고 배설하면서 생활하다 자기만의 정신적 세계에 빠져 고독하게 죽음을 맞는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아내 우르술라는 남편이 실험에 미쳐서 집안을 돌보지 않고 차남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전쟁을 벌여 상황이 악화되어서도 동물 모양 과자를 팔아서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간다. 그녀는 늙어 치매에 걸리고 실명하여 몸이 씨앗만큼 쪼그라들어서 고독하게 죽는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의 장남인 호세 아르카디오는 어릴 때 집시 소녀에게 홀딱 빠져서 말없이 마을을 떠난 후 어쩌다 세계여행까지 하고 돌아왔다. 그는 표류되어 한국 동해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의붓 여동생 레베카와 결혼하여 잘 생활하다 갑자기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고독한 죽음을 맞는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의 차남인 호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금물고기를 만드는 내성적인 청년으로 성장한다. 17명의 여자에게서 17명의 자식을 낳는 부엔디아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수많은 전투를 벌이다 결국 보수파에게 항복하고 결국 마콘도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그는 아버지가 죽은 밤나무 아래에서 고독하게 죽는다.

아마란타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의 딸이다. 피에트로 크레스피를 사랑하여 여러 가지로 문제를 일으켰으나 막상 그가 구혼을 하자 거절한다. 크레스피는 충격을 받아 자살을 하고 그녀는 아궁이에 손을 넣어 화상을 입는다. 평생 손에 검은 붕대를 감고 처녀의 몸으로 부엔디아 가문의 자손들을 돌보다 자신의 수의를 짜기 시작한다. 그녀는 수의가 완성되는 날 죽는다고 말하고 정말로 수의를 다 짠 날에 고독하게 죽는다.

레베카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의 수양딸이다. 그녀는 피에트로 크레스피와 결혼을 하려다 의붓오빠와 결혼을 하고 생활하다 남편이 죽은 이후 세상과 단절하고 홀로 살다가 깊은 고독 속에서 죽는다.


이제까지 ‘백 년의 고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중에서 직계가족에 해당하는 몇 명만을 간단히 소개하였다. 가능한 간략 하면서도 핵심점인 부분만을 설명하였다.

이 글을 읽는 눈치 빠른 분들은 등장인물 소개에서 뭔가 중요한 중복되는 부분을 놓치지 않았길 바란다.

그것은 바로 왜 이 책의 제목이 ‘백 년의 고독’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뉘앙스가 깊게 담겨있다.

등장인물 소개의 마지막 끝나는 부분이 모두 ‘고독하게 죽는다 또는 고독한 죽음을 맞는다’로 끝이 난다.


‘백 년의 고독’에서 마꼰도 마을을 세우고 가문을 일으켜 실질적인 글을 이끌어 나가는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죽음의 장면을 읽어보자.

고독 속에서 마주하는 죽음에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이 함께 묘사되어 형언키 어려운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비시따시온이 무엇하러 갑자기 돌아왔느냐고 묻자 그가 엄숙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왕의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왔지”

그들은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방으로 가서 그를 온 힘을 다해 흔들어보고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콧구멍 앞에 거울을 갖다 댔지만, 그를 깨울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목수가 관을 만들기 위해 그의 몸 치수를 재고 있을 때, 그들은 창밖으로 작은 노란 꽃들이 보슬비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꽃비는 조용한 폭풍우처럼 밤새도록 내려 지붕들을 덮고 문들을 막아버렸으며 밖에서 잠을 자던 짐승들을 질식시켜 버렸다. 너무나 많은 꽃들이 하늘에서 쏟아졌기 때문에 아침이 되자 거리가 폭신폭신한 요를 깔아 놓은 것처럼 되어버려서 장례 행렬이 지나갈 수 있도록 삽과 갈퀴로 치워야 했다.’


우리는 여기서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나 왕의 죽음과 연계시키며 노란 꽃은 신성(神性)과 구원으로 병치(倂置)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독이 들어있는 커피를 마시고 겨우 살아나서 몸을 회복하는 과정 가운데 하는 대화에서 전쟁의 의미와 무상함을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날 밤, 그가 물었다.

“친구, 한 가지만 얘기해 주게, 자넨 왜 전쟁을 하고 있는가?”

“왜라니, 친구. 위대한 자유당을 위해서지.”

“그걸 알다니 자넨 행복한 사람이군. 난 말이야,

자존심 때문에 싸우고 있다는 걸 이제야 겨우 깨닫게 되었네” 그가 말했다.

“그래. 하지만 어찌 됐든, 왜 싸우는지도 모르는 것보다야 더 낫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말했다. 그는 친구를 쳐다보다가 미소를 머금으며 덧붙였다.

“또 말이야, 자네처럼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보단 더 낫지”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인 헤로도토스는 전쟁의 아픔에 대해 말하기를 다음처럼 강조하였다.

“순전히 자기 의지대로 평화보다 전쟁을 택할 만큼 정신 나간 이가 있을 리 없다. 평화에는 아들이 아비를 묻지만 전쟁에는 아비가 아들을 묻기 때문이다.”


고독과 죽음은 사랑과 함께 간다는 의미를 진하게 담고 있는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은 마무리를 예견으로 끝낸다.

“백 년의 고독한 운명을 타고난 가문들은 이 지상에서 두 번째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양피지들에 적혀있는 모든 것은 영원한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반복되지 않는다고 예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차가워지는 11월이 되고 시든 잎이 떨어져서 길 위에서 버석거린다.

121동을 지키는 경비 아저씨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큰 빗자루를 들고 떨어지는 잎사귀들을 하루 종일 쓸고 또 쓸고 있다. 쓸고 간 자리 뒤로 다시 낙엽이 가만히 진다.


시인 이시영은 낙엽 지는 십일월을 이처럼 노래하고 있다.


“십일월”

누가 마당을 쓸고 있다.

낙엽 흩날리고 날은 벌써 저무는데

바람 속에서 누가 자꾸 마당을 쓸고 있다.



Friday, November 14th.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