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신에게 무엇을 언약할 것인가?

by James Kim





"앞으로 나는 내 자신에게 무엇을 언약할 것인가.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아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이 밤에 나는 예감을 응시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박 경리 [토지] 서문(序文)에서


“악양평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넘볼 수 없는 호수의 수면 같이 아름답고 광활하며 비옥한 땅이다. 그 땅 서편인가? 골격이 굵은 지리산 한 자락이 들어와 있었다. 지리산이 한과 눈물과 핏빛 수난의 역사적 현장이라면 악양은 풍요를 약속한 이상향(理想鄕)이다. 두 곳이 맞물린 형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가. 고난의 역정을 밟고 가는 수 없는 무리. 이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라면 이상향을 꿈꾸고 지향하며 가는 것 또한 우리네 삶의 갈망이다. 그리고 진실이다.”

사람이 한평생을 오롯이 꼿꼿하면서 바르게 살아가는 일은 정말 힘이 드는 일이다. 자신의 분수를 지키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쓰고 모범이 되는 생활을 영위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쓰는 일도 힘들고 지난한 일이다.

박경리 선생은 대하소설 토지를 3번의 서문과 함께 5부작으로 분배하여 20여 권에 이르는 책으로 펼쳐냈다. 다 읽기도 버거운 분량을 선생은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원고지를 채워가는 수많은 인고의 밤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새삼 사람의 참고 이겨내는 힘의 무서움에 대해 생각을 한다.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맥락에 어울리는 한 문장의 소중함과 간절함에 대해 많은 선택의 고민을 기울인다.

명문의 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앞 문장과 뒷 문장이 매끄럽게 연결되어 의사전달이 확고하고 너무 건조하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으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다음 문장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가 생겨나게끔 이어지는 글이 되어야 한다.

가만히 글을 읽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 문장의 깊은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면서 머릿속에 담아놓고 싶은 문장과 문구들이 들어있는 글,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 모든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비교하고 분석하고 파악한다.

다른 작가의 작품 속에서 감동이 밀려오는 훌륭한 문장을 만나면 반가움과 부러움이 가득하며 나는 언제나 저런 창작에 대한 혜안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감과 좌절감을 맛볼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서 굴하지 않고 다시 펜을 들어 글을 쓰고,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한참을 쓰고 또 한참을 읽어보는 과정이 글을 쓰는 과정 중에서는 필수적으로 가미되어 있다. 그러다가 다시 지우고 고치기를 반복하는 편집의 과정을 거쳐야만 글이 모가 나지 않고 둥글둥글하며 매끄럽게 굴러나가는 느낌을 갖는다.


특히 시대극을 다루는 소설 장르에 있어서는 시간적이고 역사적인 고증을 거쳐 글의 앞과 뒤에 뒤틀림이 없어야 하는 게 중요한 일이다. 더욱이 토지와 같은 대하역사소설은 등장인물의 시대적 캐릭터 변화가 일어남에 따라 주변의 상황정리 등이 두서가 바뀔 수 있어 복잡해진다.

이러한 모든 점을 고려하여 글을 풀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선생의 깊은 고뇌와 혼란을 토지의 서문을 가만히 읽어보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아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이 밤에 나는 예감을 응시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포기와 좌절감, 저항 함으로써 자신을 방어, 도전으로 비약...., 선생은 쓰는 일이 험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비 내리는 밤에 차분히 빗소리를 듣는다. 그러면서 몸을 추스르고 다시 펜을 잡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선생은 다음처럼 스스로를 다잡고 이를 물고 이겨냈으리라.


"대매출의 상품처럼 이름 석 자를 걸어놓은 창작 행위.

이로 인하여 무자비하게 나를 묶어버린 그 숱한 정신적 속박의 사슬을 물어 끊을 수는 없을까?

자의로는, 그렇다, 도망칠 수는 없다.

사슬을 물어 끊을 수도 없다.

용기가 없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운명에의 저항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시각까지 내 스스로는 포기하지 않으리.

그것이 죽음보다 더한 가시덤불의 길일지라도. “


선생 자의로는 도망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용기가 없는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운명에 대한 저항인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선생은 마지막 시각까지 내 스스로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깊은 각오를 다진다. 그것이 죽음보다 더한 가시덤불의 길일지라도.....

힘듦을 참아내는 것은 용기일 뿐 아니라 깊은 지혜가 포함된 거룩한 행위 임에 틀림없다.

산다는 것에 대한 깊은 의미와 성찰에 대해 선생이 말한 것을 살펴보자.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애잔하다.

바람에 드러눕는 풀잎이며

눈 실린 나뭇가지에 홀로 앉아 우짖는 작은 새,

억조창명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과

애잔함이 충만된 이 엄청난 공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의 일사불란한 법칙 앞에서

나는 비로소 털고 일어섰다.

찰나 같은 내 시간의 소중함을 느꼈던 것이다. “


산다는 것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애잔하다고, 한 줄기 바람에도 드러눕는 풀잎처럼 약한 존재이며 눈 실린 나뭇가지에 홀로 앉아 우짖는 연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새 같은 운명.

아름다움과 애잔함이 함께하는 공간 속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법칙 속에서 털고 일어서는 찰나와 같은 시간의 소중함을 간직한 존재.

그러나 무엇과도 비교 불가하고 대체 불가능한 소중함, 그것이 산다는 것이라고 선생은 말하고 있다.

푸른 잎 피어 초목이 왕성하던 격정의 여름은 가고 바람이 불어 낙엽이 이리저리 쓸리는 가을도 지나갔다. 이제 어디선가 가만히 캐럴송이 들려오고 아파트 입구 초라한 성탄 트리에 불이 밝혀졌다. 12월이 왔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한 해의 날들에 대한 예의를 지켜 감사함을 담아 수줍게 미소를 보낸다.



Friday, December 12t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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