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고유한 목적은 행복이며,
은총 속에 있는 영혼의 찬란함은
창조된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능가한다.”
-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서방교회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자이다. 또한 자연 신학의 으뜸가는 선구자이며 서방교회에서 오랫동안 주요 철학적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는 토마스학파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현재 로마가톨릭교회는 그를 신학자요 박사로 존경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그의 이름을 딴 학교나 연구소 등이 많이 있다.
그는 기독교 교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종합하여 스콜라 철학을 대성한 중세 기독교 최대의 신학자이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를 수용할 때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을 완성시킨다"는 태도를 갖고 은총과 자연, 신앙과 이성 사이에 조화로운 통일을 부여했다. 그의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은 특기할 만한 것이다.
그는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의 경고처럼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은 마치 세상의 모든 진리가 그 한 권의 책 속에 있는 것처럼 아집과 오만, 편견의 늪에 빠지게 된다. 세상을 흑백논리로만 보고 나누면 확증편향에 갇히기 쉽다. 확증편향에 갇힌 사람은 비뚤어진 신념을 가지게 되고 이는 반드시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막스 뮐러가 말한 “하나만 아는 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라고 한 것과 같다.
참고로 막스 뮐러는 슈베르트의 대표적 가곡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겨울 나그네」 가사인 시의 원작자인 독일의 시인 빌헬름 뮐러의 아들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외에도 유명한 많은 명언을 남겼으며 ‘장미의 이름’을 저술한 ‘움베르토 에코’도 그의 사상과 그의 글에 심취해서 작품에 많은 인용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명언(名言)을 몇 구절 더 살펴보며 지혜를 얻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가 아니라 그 말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살피도록 하라.”
“열정은 악이 될 수도 있고 선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향한 열정인가 하는 점이다.”
“잃어버린 선(善)에 대해 괴로워한다는 것은 아직 자기 내면에 선(善)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낫고 아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낫다.”
선각자들의 글이나 명언을 읽고 가만히 음미해 보면 만사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가볍게 보지 말고 애정을 가지고 깊게 지켜보는 깊은 성찰을 거듭 강조하는 것 같다.
오늘은 이제 2025년도 10여 일 밖에 남지 않은 일요일이다. 오늘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어나 정해진 스트레칭을 하고 책상에 앉아 독서를 시작한다. 오늘 마무리할 책은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다.
주인공 고양이는 영어 교사인 구샤미 선생 집에 살며 이름이 없다. 이름이 없어서 인력거꾼 집에 사는 까만 고양이로부터 놀림을 받고 무시를 당한다. 얼룩무늬 고양이인 미케코를 사랑하였으나 그녀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사랑의 슬픔을 느끼기도 하는 순정파의 주인공인 고양이 이기도 하다.
고양이의 시각에서 바라본 인간들의 가식적인 모습, 위선과 허위의식을 비웃는 풍자는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채로운 인간 세상을 경험한 주인공 고양이는 드디어 인간들이 마시고 온갖 헛소리를 해대는 술을 마셔 보기로 결심한다.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이다. 뭐든지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 경험해 둬야 한다. 죽고 나서 ‘아아, 안타깝다’ 하고 무덤 속에서 억울 해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옳지, 눈 딱 감고 마셔봐야지’ 하고 기세 좋게 혀를 쑥 내밀고 할짝할짝 핥아보고선 놀랐다. 어째 혀끝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이 짜릿짜릿한 게 이상하다. (.....)
차츰 평온해지는 것 같다. 지금 괴로운 상태에 있는 건지, 편안한 상태에 있는 건지, 방바닥에 누워 있는 건지 분명치가 않다. 어디서, 어떻게 하고 있든지 간에, 그냥 평온하다. 아니, 평온하다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한다. 해와 달을 베어 떨어드리고, 온 천지를 모조리 분쇄하여 불가사의한 평화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죽는다. 죽어서 이 평화를 얻는다. 평화는 죽지 않고선 얻을 수 없나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복되도다. 복되도다!’ (엔딩 파트 p515)에서
고양이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이 생각을 하였다. 우리 인간은 세상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작은 일에 너무 큰 의미를 두려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타인의 삶에 너무 무관심한 것은 아닌지를 생각했다.
한 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이 시점에서 뭔가를 마무리하고 정리하여야 한다는 아쉬움이 계속 남아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뚜렷이 무엇인지 실체를 모르는 무언가를 마무리하고 정리하여야 한다는 미루어놓은 숙제 같은 불편함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고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일이 남아 있는가? 누구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눈물짓게 한 일이 있는가? 누군가에게 갚지 못한 감사함의 인사말이 남아 있는가?
지금부터라도 차분히 앉아 해야 할 일에 대한 하지 못한 일을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미안함에는 사과를 하고 감사함에는 진정한 고마움을 표시해야겠다. 아직 남아 있는 날들이 있으므로 미루어놓은 숙제는 기한 안에 끝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고도 찾아내지 못한 숙제는 검사의 날이 다가왔을 때 거기에 해당하는 응분의 질책과 책임을 기꺼이 감수하리라.
오늘은 글을 쓰기 전에 화분에 심겨있는 화초를 욕실로 옮겨 실내온도와 비슷하게 수온을 맞추어 물을 주었다.
겨울철이니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10일 후인 새해 첫날 다시 물을 주는 것이 좋을듯하다.
아카우리아 초록잎에 비추는 햇살이 반짝거리는 일요일 오후이다.
Sunday, December 21st.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