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에 강한 인간

by James Kim





“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나이가 들면 친구도 한 사람 한 사람 줄어든다.

아무도 없어도 어느 날 낯선 동네를 혼자서 산책할 수 있는

고독에 강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소노 아야코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에서

2026년 새해가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싸한 추위와 함께 왔다. 한동안 순하고 따뜻한 겨울이 지속되어 왔는데 갑자기 차가운 날씨에 접하게 되니 마음을 새롭게 다짐하는 계기가 된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옛날의 겨울은 지금의 기온보다 훨씬 더 추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눈이 더 자주 많이 내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겨울날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저녁에 땐 아궁이 군불로 따뜻했던 아랫목이 차갑게 식어 그나마 체온으로 덥혀진 이불속에서 벗어나기가 싫어 뭉그적 거릴 때 어머니가 “눈이 많이 왔다, 얼른 일어나라”소리에 이불을 걷어차고 바라본 마당 곁의 감나무 아래 장독대에 하얗게 쌓인 눈이 참 이뻐 보였다. 식구들이 모여서 아침을 먹고 나자마자 아이들이 밖에서 떠드는 소리에 숟가락을 내려놓고 토끼털로 만든 둥그런 귀마개를 쓰고 동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눈싸움은 손이 시린 줄도 모르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재미있는 어릴 적 눈이 내린 겨울날 놀이의 시작이었다.

오후가 되며 골목을 지나치는 사람들과 꼬마들이 밟아 다져진 눈길은 뺀질뺀질하여져서 눈썰매를 타기에 적당해진다. 눈썰매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동네 아이들과 부지런히 썰매를 지치다 보면 추위는 사라지고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나와 마냥 웃으며 썰매 시합과 묘기를 뽐내는 시절이었다.

이렇게 눈썰매 지치기는 어린 시절 겨울날 눈싸움에 이어 제2의 눈이 내린 날의 즐거운 놀이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한참을 눈밭 위에서 놀다 보면 배도 고프고 무엇보다도 발이 시려온다. 까만 고무신을 신던 시절 헌 양말을 두 겹 세 겹 겹쳐 신어도 발은 항상 시렸다. 모든 양말은 뒤꿈치와 엄지발가락 부위는 늘 구멍이 나 있었다. 눈에 젖은 양말은 축축하게 젖어서 발이 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으로 썰매를 들고 들어와 아궁이를 먼저 찾아 젖은 양말이 감싸고 있는 얼어있는 발을 아궁이 속 남아있는 불기 위에 언 발을 녹인다. 잠시 후 젖은 양말을 신은 발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발이 뜨거워지면 아궁이에서 발을 빼서 문지르고 식으면 다시 발을 아궁이 재 위에 올리고를 반복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어린 시절 나의 발은 늘 동상에 걸린 상태로 고생을 해야 했다. 특히 밤에 잠을 자려하면 동상에 걸린 발이 가려워 도저히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군불을 때서 따뜻해진 이불속은 발을 너무 가렵게 해서 발을 들어 차가운 벽에 발을 올리고 잠에 들기도 했다. 그러다 발이 툭하고 미끄러져 내려오면 잠에서 깨어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어릴 때는 동상에 걸린 것을 발에 얼음이 들었다고 했다. 얼음을 빼기 위해서는 얼음이 효험이 있다 해서 세수대 얼음물에 발을 담가 보기도 했는데 너무 발이 시려 몇 번 하다 그만두었다. 콩이 효험이 있다 해서 콩을 넣은 자루에 발을 넣고 콩이 쏟아지지 않도록 묶어서 치료도 해 보았으나 별로 효험이 있지 않았다.

그 시절 그래도 겨울철 아이들과의 놀이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날이 몹시 추워지는 날 저녁이 되면 우리 꼬마들은 바가지에 가득 물을 퍼와서 내리막이 있는 골목길에 뿌려 놓았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그 내리막 골목길은 말 그대로 얼음 미끄럼틀이 되어있는 것이다. 고무신을 신고 얼음 미끄럼틀을 누가 더 멀리 내려가는지 시합하는 그 재미는 눈싸움과 눈썰매 타기와 함께하는 한겨울 3종 종합세트 결정판이었다.

그 재미있는 골목길 얼음 미끄럼틀 놀이는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거기서 낙상 사고를 당한 후 아저씨로부터 호되게 혼이 나고 끝이 난 것 같다.


그 시절 그때는 시골 농촌에도 친구들과 아이들이 참 많았다. 골목에는 늘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가득했으며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었다.

식구들은 많았고 먹을 것은 늘 부족했고 옷과 양말은 쉽게 헤지고 터지기 일쑤였다. 어른들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즐겁게 초등학교 시절의 생활을 보냈었다.

음악 시간이 되면 다른 교실에서 친구들과 여럿이 풍금을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아슬아슬하게 옮기면서 낄낄대던 웃음소리가 남아있다.

점심시간에 학교 소사 아저씨가 쪄낸 김이 폴폴 나는 노란 옥수수떡을 반 아이들 수만큼 큰 대야에 담아 나르던 당번 활동이 생각나며 고소한 옥수수 떡의 내음도 남아있다.

아침을 굶고 등교하여 학교에서 단체로 회충약을 먹어야 하는 어느 봄날 햇살이 따사로운 교정의 양지쪽에 누렇게 영양이 결핍된 상태의 배고픈 얼굴을 한 꼬맹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햇빛을 쪼이는 모습도 또한 보인다.


이제 그 어린 소년은 어디로 사라지고 힘없고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만이 남아 옛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그 시절 골목길에서 쏟아지던 그 많은 친구들의 모습도 희미해져 가고 기억도 가물가물 멀어져 간다.

지금 내 옷장에는 따뜻하고 두툼한 의복이 가득하고 서랍에는 포근한 새 양말이 넘쳐난다. 신발장에는 새 운동화와 반짝이는 구두가 신을 날을 기다리고 있으나 지금의 나에게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있다. 같이 함께 웃고 놀아줄 그때의 친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멀리 떠나와 홀로 나이가 들면 친구도 없고 아는 이 또한 한 사람 한 사람 줄어들고 사라진다.

아무도 없어도 어느 날 낯선 동네를 혼자서 산책할 수 있는 고독에 강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혼자서 커피를 마시며 독서를 하고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진정 홀로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제 홀로 밤에 깨어 억지로 잠을 청하려 하지 않는다. 한밤중 잠에서 문득 깨어나서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음악을 틀고 책을 읽는다. 책을 읽다 눈이 아프면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면 졸음이 온다. 졸음이 오면 다시 잠을 잔다.

이제는 무엇이든 억지로 하려 하는 나이는 지났다. 세상만사를 물 흐르듯 살아나가려 한다. 거스르지 않는 삶을 살기 딱 좋은 나이다. 억지로 세상을 거스르기에는 너무 힘에 버겁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백 년의 고독’에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노후 독백을 통해 다음처럼 말하고 있다.


‘노년기를 좋게 보내는 비결은 다름이 아니라

고독과 명예로운 조약을 맺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박노해 시인은 ‘고독’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고독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것이다.’


2026년 새해가 가슴속으로도 너무 춥다고 느껴지지 않기를 바란다.


Friday, January 2nd.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