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eu 2025

저녁이 된 것을 용서하라!

by James Kim






해는 벌써 졌구나.

그는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풀밭은 눅눅해지고 숲에서는 냉기가 몰려오는구나.

미지의 것이 나를 둘러싸고, 깊은 생각에 잠겨 바라보고 있다.

도대체! 그대는 아직도 살아 있는가, 차라투스트라여?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무엇에 의해서?

어디로?

어디서?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다니, 어리석지 않은가?

아, 벗들이여, 나의 내면에서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은 저녁이다.

나의 슬픔을 용서하라!

저녁이 되었다.

저녁이 된 것을 용서하라!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이 되었다. 똑같은 하루이지만 우리는 한 해를 여는 새해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모에 의미 두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기에 한 해의 마지막 날은 서해에 가서 ‘해넘이’를 가지고 새해의 첫날에는 동해에 가서 ‘해돋이’를 하며 의미를 두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 인간은 1년 365일 똑같이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같은 날에도 개별적인 의미를 두어 새롭게 인식하고 기념일로 여겨 축하나 애도를 한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날은 근사한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며 축하의식을 한다. 조상님이 돌아가신 날은 그날을 기려 제사를 드리며 애도하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렇게 개별적으로 의미가 부여되는 날을 제외하고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거의 공통으로 기념하는 날은 가는 해를 보내고 오는 해를 맞이하는 풍습이다.

매일 저녁 지는 태양과 매일 아침 뜨는 태양이지만 12월 31일에 지는 태양과 1월 1일에 뜨는 태양은 확실히 다른 의미가 부여되는 태양이다.


시인 김춘수는 그의 시 “꽃”에서 이르기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똑같은 꽃이지만 이름을 불러 의미를 부여하였을 때 비로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의미부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가 꽃에게 의미를 부여하여 비로소 나의 소중한 꽃이 된 것처럼 누군가도 나를 불러, 내가 나를 불러준 이의 꽃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시인은 의미부여의 분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는 상호 인식과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서로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 존재의 의미를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여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존재를 확립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개인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를 존재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서로를 인식하고, 인정함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이는 개인의 존재를 확립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시인은 서로를 존중하고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이는 인간관계의 기본이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은 의미 부여와 해석을 통해 "꽃"은 단순한 시가 아닌, 존재와 정체성, 인식과 관계에 대한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분명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끝자락의 저녁에서 서녘으로 지는 해는 한 해를 최선을 다해 불사르다가 서서히 힘을 잃고 식어가는 태양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1년 365일을 매일같이 떠올라 세상을 밝히고 뜨겁게 살아온 열정과 근면함에 감사의 마음과 애정을 담아 숭고한 마음으로 보내고 싶다.

뜨거운 열정을 담은 한낮의 태양처럼 나의 청춘과 젊음도 뜨거움이 가득했었고 꿈과 사랑이 가득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저녁이 되었다.

니체는 말하고 있다.


“나의 슬픔을 용서하라!

저녁이 되었다.

저녁이 된 것을 용서하라!”


이제 예를 갖추어 단장을 하고 저녁이 내리는 서녘의 바닷가에 서서 저물어가는 해를 보내러 갈 준비를 해야겠다.




Adieu 2025



Wednesday, December 31st.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