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감 있는 재미있는 글을 위하여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일부러 세상을 떠돌아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쓸쓸함이 거기 가득했다.
바다가 태양을 품으면 찬란함으로 가득하고,
낭만을 품으면 사랑으로 가득하고,
분노를 품으면 파괴로 가득하겠지만.
쓸쓸함을 품으면
얼마나 거대한 슬픔과 고독을 빚어내는지 알 것 같았다.”
- 이희인 ‘여행의 문장들’에서
은퇴자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다양한 테마를 가지고 5개월째 무작위로 글을 써오고 있다. 시간이 허락하는 날은 매일 글을 써서 올리고 어딜 가거나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은 2~3일에 한 번씩 글을 써서 올린다.
내가 쓰는 글의 소재는 다양한데, 나는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구문이 나오면 밑줄을 긋고 노트나 수첩에 필사를 하여 놓는 습관이 있다. 그 필사하여 놓은 자료를 기반으로 하여 글을 쓸 때 한 꼭지씩 꺼내어 테마로 삼아 글을 풀어나가다 보니 내가 읽었던 책들의 다양한 소재의 테마가 나올 수밖에 없는 글을 풀어나가고 있다.
나는 말을 풀어나가는 이야기꾼의 소질도 부족하고, 전문적인 국문학이나 언어이론 교육을 정식으로 받지 않은 관계로 글을 이어 나가는 기술도 많이 뒤떨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공감하여 주기를 바라기보다는 나 스스로가 세상과의 단절을 피하기 위하여 나름 생각을 정리하고 이론을 확립하여 자신만이라도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써나가려 노력해 왔다.
그렇게 글을 써오다 보니 이제까지 써온 글들이 건조하고 재미없는 딱딱한 설명과 훈계 위주의 일명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톤으로 흐른 경향이 짙은 것 같다. 요즈음은 소설도 읽는 재미가 없으면 팔리지를 않고, 수필이나 전문 서적도 읽을 때 먼저 재미가 있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여야만 다음 단계의 진도가 나가는 법인데 말이다.
내가 쓴 글을 내가 읽어 보아도 수십 년간 머리와 몸이 체득한 아이들을 가르쳤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훈계와 설명이 가득한 선생이 학생을 지도하는 스타일의 글이 나도 모르게 나열되고 있다. 무언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알 때까지 가르치려 하는 선생의 본능이 글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는 그래도 수업의 텐션이 떨어졌을 때는 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루함을 덜고 재미와 관심을 유발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적당한 유머와 함께 목소리 톤의 조절과 다양한 행동의 변화를 가져왔건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에는 그러한 생동감이 빠져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나의 글에게 묻고 싶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인가, 아니면 이 글을 읽는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것인가를. 나의 글을 읽는 이를 교탁 아래 앉혀 두고 칠판을 두드리는 대신, 같은 높이의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나는 이런 생각을 했는데, 당신은 어땠나요?”하고 말을 건네는 글을 쓰고 싶다. 정답을 제시하는 문장보다 망설임이 묻어나는 문장, 결론을 단정하는 문장보다 여백을 남기는 문장이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설명을 줄이고 재미를 늘리고, 훈계를 덜고 인간의 숨결을 보태며, 문학과 예술의 서사를 조금 더 인간적으로 나누려 한다. 그렇게 쓰인 글이라면,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나의 글을 읽는 소중한 분들과 호흡을 맞추는 온기는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그 온기야말로, 내가 이토록 세상과 연결하는 끈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글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문장이 아니라 함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문장, 이해시키는 글이 아니라 “나도 그래”하고 누군가를 공감하게 하는 진심이 담겨있는 글.
그런 글은 국어 교과서에 실릴 만큼 세련되고 훌륭한 글은 되지 않겠지만, 읽는 이의 하루 어딘가에 조용히 머물다 문득 다시 떠올리며 조용히 생각날 그런 글이었으면 한다. 이제는 잘 쓰는 글보다 함께 숨 쉬는 글을, 똑똑해 보이는 문장보다 사람 냄새나는 문장을 조금 더 써보려 한다. 그렇게 나의 글은 부족하지만 가르침이 아니라 동행이 되고, 설명이 아니라 대화가 되기를 바란다.
사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글이 꼭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싶다. 다 읽고 나서 “아, 오늘도 하나 배웠네”가 아니라 “그래, 나만 그런 건 아니었구나”정도의 공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커피 한 잔 마시다 말고 문득 떠올라 피식 웃게 되는 문장 하나, 혹은 잠들기 직전에 괜히 마음이 좀 느슨해지는 문장 하나면 나는 만족한다. 잘난 척하는 글보다 진솔한 글이, 해답을 말하는 글보다 함께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게 하는 글이 오래 남는 법이니까. 나의 글은 완벽하고 훌륭한 문장으로 구성된 내용은 아니겠지만, 외롭고 쓸쓸하게 소외된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차분히 나누는 마음으로 쓰고 싶다.
그러다 보면 글은 어느새 수업이 아니라 잡담이 되고, 독자는 학생이 아니라 잠시 옆자리에 앉아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된다. 굳이 메모할 필요도 없고, 시험에 나올 걱정도 없는 이야기들, 몰라도 전혀 창피하거나 교양이 없다는 소리를 듣지도 않으며 잘난 체할 수도 없고, 해도 안 되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해 못 해도 괜찮고, 중간에 딴생각을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그런 글 말이다. 읽다 말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이 사람도 별수 없네”하고 웃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오늘도 거창한 교훈이나 설명 대신 소소한 수다 한 토막을 올려두고, 누군가가 지나가다 잠깐 앉았다 가기를 은근히 기대해 본다.
어쩌다 마음이 조금 허전한 날, 글을 읽고 나면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조금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 되면 좋겠다. 연인과 이별을 하고 마음이 갈 곳을 몰라 헤매는 날, 글을 읽고 나서 조금이라도 덜 슬퍼지는 글이 되면 좋겠다.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정말 조금이라도 세상을 살아 나갈 수 있는 지혜가 담겨있는 글이 되면 좋겠다.
그러나, 읽고 나서 무언가를 결심하지 않아도 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부담 없는 글이 되면 좋겠다, 그냥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어”하고 혼잣말처럼 흘려보낸 문장에 누군가가 “나도”하고 속으로 답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한 글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쓰며 가볍게 자리를 내어준다. 오래 머물러도 좋고, 말없이 다녀가도 괜찮은, 그런 글 한 편을.
혹시 이 글을 읽다 말고 잠시 숨을 고르게 되었다면, 그걸로 이미 충분하다. 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고, 마음에 남는 문장 하나만 공감해 줘도 좋다. 이 글을 누군가를 붙잡아 두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잠시 쉬어가도 된다는 말을 건네기 위해 쓰였으니까.
오늘 하루가 조금 버거웠던 사람이라면 여기서 잠깐 앉았다 가도 좋겠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때, 이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하나쯤은 조용히 주머니에 넣어가기를 바란다.
오늘도 힘들고 피곤한 당신이 나의 어설픈 글방에 잠깐 들러 마음을 추스르고 쉬다 가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인연의 일입니다. 잠시 앉았다 가는 당신을 위해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Sunday, January 25th.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