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를 준비시켰다면, 길은 나를 완성시켰다
“내게 어딘가 다른 곳의 중요성은 신념과도 같은 것이었다.
다른 곳이란 내가 있고 싶은 장소였다.
그곳으로 떠나기엔 너무 어렸기에,
나는 자유에 대한 환상을 품은 채 그곳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책은 나의 길이 되었다.
그 뒤 그곳으로 떠나기에 충분한 나이가 되었을 때,
내가 여행한 길들은 내 책의 집요한 주제가 되었다.
그리고 가장 열정적인 여행자가
가장 열정적인 독자이자 작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오랫동안 떠난 당신은 다른 사람으로 돌아온다.
당신은 결코 갔던 길을 되돌아오지 않는다.”
폴 서루(Paul Theroux) ‘여행자의 책’에서
폴 서루는 베스트셀러 여행기 『유라시아 횡단기행 The Great Railway Bazzar』과 『중국 기행 Riding the Iron Rooster: By Train Through China』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다.
그는 여행은 고독을 동반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독은 때로 애처로우면서도 더 자주는 우리를 풍요롭게 해 주고 가끔은 예기치 않은 깨달음을 가져다주기도 한다고 강조한다.
덴마크의 동화작가로 유명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고독과 향수병에 대해서 1856년 그의 편지에서 다음처럼 썼다.
‘향수병은 잘 알려진 고통스러운 느낌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고통은 덜 알려진 것이다. 그것은 ‘타향병’이라고 부를만한 것이다.
눈이 녹고 황새가 다시 찾아들고 첫 증기선이 출발하면, 나는 여행의 충동에 시달린다.’
책과 여행, 그리고 고독은 서로 연결되는 어떤 함수관계가 존재하는 듯하다. 여행을 떠나며 짐꾸러미 맨 위에 여행하는 동안 가장 읽고 싶은 책을 소중히 놓아두는 마음은 아름답다. 여행은 설레고 가슴 뛰는 멋진 경험이면서도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것 들과 마주하는 생경함이 두려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럴 때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요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책이다. 일정하게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기차 안에서 하는 독서는 참으로 운치가 있다. 책을 읽다 눈이 피로하여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면 차창으로 새로운 세상이 지나가며 여행자를 반긴다. 여행지로 이동하는 기차나 비행기에서의 독서는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마음속의 생경함과 두려움을 떨궈버리며 차분히 진정하게 하는 평정심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에서 만나는 설레고 흥분되는 그 장소와 감정을 무시한 채 책만을 읽는 행위는 결코 여행의 진수라고 할 수는 없다.
헤르만 헤세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책과 여행의 함수관계를 다음처럼 한 구절로 정리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길가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나 기어 다니는 작은 벌레 한 마리가 도서관을 가득 채운 모든 책들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
그런가 하면 파울로 코엘류는 ‘연금술사’에서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산티아고에게도 길을 떠나던 날부터 읽으려 했던 책이 한 권 있었다. 그러나 대상 행렬을 바라보거나 바람 소리를 듣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그는 자신의 낙타를 더 잘 알고 싶었고, 낙타와 친해지기 시작하자 책을 던져버렸다. 책은 이젠 그에게 그저 무게만 나가는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책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입을 통해 이렇게 소리친다.
‘당신 책을 한 무더기 쌓아놓고 불이나 놓아버리쇼.
그러고 나면 누가 압니까,
당신이 바보를 면할지.’
그들이 공통으로 일러주는 것은 결국 한 가지이다. 여행은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이 한 장씩 벗겨지는 사건이라는 사실을.
결국 여행이란 지식을 더하는 행위가 아니라, 익숙한 자아를 낯설게 흔들어 깨우는 체험임을 그들의 문장은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길 위에서 읽어야 할 것은 책장이 아니라 바람의 소리, 사람의 눈빛, 그리고 그 낯선 장소의 순간에서 열리는 나 자신의 뜨거운 심장이다.
그 작가들의 목소리는 서로 달랐지만,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행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과 만나는 행위는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자연스레 체득하고 측정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깨닫는다. 여행의 깊이는 읽은 문장의 수가 아니라, 떨려본 순간의 밀도로 측정된다는 것을 이해한다.
책이 나를 준비시켰다면, 길은 나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그 완성은 활자가 아니라 체온으로 기록되었다.
그들의 문장을 덮는 순간, 나는 비로소 알았다. 여행은 읽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봉인이 하나씩 풀리는 고요한 개화(開化)와 같은 가르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활자로는 끝내 담기지 않던 세계가 골목의 햇살과 낯선 언어의 울림 속에서 서서히 체온을 얻고 있었고, 나는 책장을 넘기는 대신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과 시장의 소음과 저녁노을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닫는다. 여행은 지식을 수집하는 일이 아니라 잊고 있던 감각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의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낯선 도시의 공기 한 모금이 수백 페이지의 문장보다 더 또렷하게 나를 흔들어 깨웠고, 길 위에서 만난 빛과 냄새와 떨림들은 어떤 책갈피로도 표시할 수 없는 문장들이 되어 내 안에 깊이 꽂혔다. 나는 더 이상 여행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파도처럼 밀려오는 순간들 속에 나를 가만히 잠기게 두려 한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길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책장 사이에, 그리고 고요히 혼자가 되는 밤의 시간 속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길 위에서 미처 다 읽지 못한 풍경들을 책 속에서 다시 만나고, 책 속에서 끝내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들을 고독의 침잠 속에서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행과 책과 고독은 서로 다른 세 갈래의 길이 아니라, 나를 더 깊은 나에게로 데려가기 위해 번갈아 불을 밝히는 세 개의 등불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길은 나를 흔들어 깨우고, 책은 나를 붙들어 사유하게 하며, 고독은 그 모든 떨림을 조용히 가라앉혀 나만의 언어로 침전시킨다.
그래서 나는 안다.
다시 길을 떠나야 할 순간에도, 다시 책을 펼쳐야 할 순간에도, 그리고 다시 혼자가 되어야 할 순간에도, 결국 내가 만나게 될 것은 낯선 세상이 아니라 한층 깊어진 나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Friday, February 13th.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