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의 삶은 버텨야 할 전쟁터가 아니다.
“세상은 죽을 때까지도 전체를 다 볼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으며,
삶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축복이라는 것을.
인간은 이 세상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살러 온 존재이며,
인생에는 가치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느 길에서라도 스스로 인간다움을 잘 가꾸기만 하면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유시민 ‘청춘의 독서’ 서문에서
설날 아침이다. 눈을 뜨고 자리에 누운 채로 가만히 세상을 사는 일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본다. 세상은 말 그대로 무한 광대로 넓으며 아무리 여행을 좋아하고 많이 다닌다 해도 모든 곳을 다 가서 볼 수는 없을 만큼 크고 넓다. 내가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다 해도 세상 책의 천 분의 일, 만 분의 일도 읽지 못함이고, 내가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난다 해도 세상 사람의 거의 대부분을 만나지 못하고 죽을 것 이리라.
나의 존재가 천지간에 하나의 먼지처럼 소소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지구라는 행성에서의 나의 삶은 말할 수 없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나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고 세상을 살면서 어떠한 이유와 과정으로든 나와 관계를 맺어온 모든 이들은 소중한 만남 속에서 맺어진 귀중한 인연이라는 사실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물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맺어진 부모 자식의 만남은 수많은 우연과 확률의 비례 속에서 생성된 고귀하고 절대 끊을 수 없는 조물주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신성한 선택이다.
그렇기에 부모는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자녀를 보살피고 올바로 키워내기 위하여 온갖 정성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자기 새끼의 안전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동물 어미의 희생과 수고로움을 자주 볼 수 있다.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한 생을 온전히 인간답게 살아가는 일은, 고난과 위험의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는 여정이다. 험한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는 끝없는 도전과 시험의 연속을 통과해야 비로소 인간으로서 대접받게 되는 지난한 과정인 것이다.
그 지난한 시간을 견디며 흘린 땀과 눈물은 인간의 영혼을 깊이 단련시키고, 마침내 자신의 삶을 온전히 감당할 줄 아는 성숙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그러나 인간은 세상을 위해 고단한 의무만을 수행하도록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삶의 자리마다 아름다움을 피워 올리며 더불어 공존하기 위해 온 존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견뎌내야 할 삶의 무게의 짐이 아니라, 서로의 온기와 관심을 나누며 세계 속에서 한 뼘씩 다가가며 서로를 알아가는 창조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흘리는 땀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관계와 사랑과 기쁨을 꽃피우는 삶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참된 사명은 세상의 온갖 무게를 홀로 짊어지는 데 있지 않고, 함께 웃고 함께 기대며 존재의 의미를 완성해 가는 데 있다.
그리하여 우리 인간의 삶은 버텨야 할 전쟁터가 아니라, 서로의 숨결로 의심과 질시를 믿음과 사랑으로 바꾸어가는 하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된다. 결국 인간은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와 같은 도구가 아니라, 만남과 연대 속에서 살아 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세계를 아름답게 번역해 가는 믿음의 결과물인 것이다.
인생에는 가치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상에서 삶을 살고 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의 고유한 서사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길이 낯설어 보일지라도 그것은 틀림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가능성이 세상 위에 펼쳐진 모습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교의 저울을 내려놓고, 이해의 시선으로 서로의 삶을 바라볼 줄 아는 성숙함에 이르러야 한다. 각기 다른 선택과 속도, 그리고 꿈의 방향들이 모여 비로소 이 세계는 단조로움을 벗고 풍요로운 빛깔을 갖게 된다. 결국 다양성의 존중이란 타인을 인정하는 태도를 넘어, 우리 자신의 삶 또한 자유롭게 숨 쉬게 하는 토양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넘어서는 순간이 아니라, 그 차이 덕분에 더 넓어진 세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어느 길에서라도 스스로 인간다움을 잘 가꾸기만 하면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삶의 깊이는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가 아니라, 그 자리를 어떤 마음으로 일구어 가는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행복은 특별한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다듬어 가는 과정 속에서 스며 나오는 향기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길의 높낮이나 속도가 아니라, 그 길 위에서 스스로의 영혼을 얼마나 성실히 돌보았는가에 있다. 그렇게 가꾸어진 인간다움은 어느 순간 삶의 가장 평범한 장면들까지도 눈부신 의미로 밝혀 준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비로소, 인생의 참된 풍요는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성숙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각자의 자리에서 피워 올린 인간다움의 꽃은 모양은 달라도, 모두가 삶을 향기롭게 하는 공통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그 믿음은 멀리서 반짝이는 성취의 빛이 아니라, 하루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는 작은 등불과도 같아서, 우리가 걷는 발걸음을 따뜻하게 비춘다. 때로는 바람이 불고 길이 흐려질지라도, 인간다움을 일구는 마음만은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어 삶의 어둠을 은은히 밝혀 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인생의 참된 충만은 어디에 도달했는가에 있지 않고,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냈는가 속에서 잔잔히 차오른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고요한 충만은, 말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나날을 깊고도 평화로운 빛으로 적셔 줄 것이다.
2026년도 벌써 1월이 지나갔고 음력 설날도 지나갔다. 이제 곧 3월이 오면 여기저기서 새싹이 움트고 꽃들이 피어나는 새봄이 시작될 것이다. 계절은 순환하여 늘 새로움을 유지하지만 인간은 새로이 변환되지 않고 하루하루를 늙고 병들어 갈 뿐이다. 그러나 늙어가는 몸과는 달리 마음만은 늘 새롭게 피어나 신선함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의 수양을 꾸준히 쌓아 가야 한다. 마음을 닦는 일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스스로 세운 수칙을 지키며 성실히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헛된 것을 비워 내고 참된 가치를 찾아가는 수행을 쉼 없이 이어 가야 한다.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안을 구하는 삶, 그리하여 무연히 흘러가는 세월을 고요히바라보며 함께 익어가는 인생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마음의 결을 다듬어 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늦은 햇살이 스며든 창가처럼 삶의 빛이 부드럽게 번져 있음을 알게 되리라. 몸은 세월을 따라 늙어가더라도, 마음만은 늘 첫봄의 숨결을 머금은 채 조용히 피어나는 한 송이 꽃으로 남게 될 것이다.
Wednesday, February 18th.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