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Humility은...

자신감‘self-confidence’을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수단

by James Kim





“진정한 자신감이란

자신감으로 위장한 겉모습이나 거짓된 허세,

또는 최악인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과 품성에 대한 진정한 인식은 자존심이 아닌

겸손 ‘humility’ 에서 나온다.


오만‘arrogance’은 자신의 강점만 보면서

자신의 약점과 남들의 강점은 무시하게 만들어

결국 큰 실수를 저지르게 한다.


반면에 겸손은 우리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 줌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보완할 수 있게 도와준다.

겸손이야말로 우리가 자신감‘self-confidence’을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수단이다.


John L. Hennessy [Leading Matters]에서



겸손의 마음과 자세는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중요한 하나의 척도이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윤리적 몸짓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결코 세계의 중심이 아님을 깨닫는 존재론적 자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타자(他者)와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음을 이해할 때, 비로소 사유와 삶의 균형을 얻게 된다. 겸손은 바로 이 지점에서 태어난다. 나의 지식이 유한함을 알고, 나의 경험이 전체가 아님을 인정하며, 보이지 않는 더 넓은 질서와 의미를 향해 마음을 열어 두는 태도, 그것이 곧 존재를 존재답게 세우는 가장 근원적인 자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겸손의 자각은 곧 배움의 윤리로 이어진다.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이 더 넓다는 사실 앞에서 마음을 열어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배움이란 지식을 축적하는 기술이기 이전에, 자신의 무지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겸손은 배움의 전제가 아니라 배움 그 자체의 형식이 된다.

스스로를 비워 낼수록 세계는 더 많은 의미로 채어지고, 타인의 경험과 사유는 나의 인식을 확장하는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된다.


존 헤네시가 말한 것처럼, 모든 답을 알고 있다고 믿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반대로 질문할 여지를 남겨 두는 태도, 타인의 통찰에서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세는 개인의 지적 성장뿐 아니라 공동체적 성숙까지 이끈다. 배움의 윤리란 결국 지식의 우열을 가르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한 자리에서 함께 진리에 가까워지려는 연대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겸손은 인간을 작아지게 만드는 덕목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존재의 지평을 끊임없이 넓혀 가게 하는 가장 생산적인 힘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배움의 윤리는 결국 실천적 삶의 태도로 귀결된다. 겸손이 사유(思惟)의 차원에만 머무를 때 그것은 하나의 관념에 그치지만, 일상의 선택과 행동 속으로 스며들 때 비로소 삶의 형식이 된다.

자신이 옳을 수만은 없다는 인식은 판단을 유보하게 하고, 타인의 처지를 한 번 더 헤아리게 하며, 서두르기보다 경청하는 쪽을 택하게 만든다. 겸손한 사람의 말이 조심스러운 이유도, 그의 걸음이 신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세계와 타자 앞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성찰하는 존재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실천으로서의 겸손은 거창한 행위에서 드러나기보다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빛난다. 공을 독차지하지 않는 태도,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배우려는 자세로 타인을 대하는 일, 그리고 자신보다 더 빛나는 존재를 기꺼이 세워 주는 선택 속에서 겸손은 구체적인 삶의 언어를 얻는다. 그렇게 겸손은 인간을 낮추는 덕목이 아니라 관계를 살리고 공동체를 숨 쉬게 하는 실천적 지혜가 된다.

결국 존재를 바로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 겸손은 배움으로 확장되고, 배움은 다시 삶의 태도로 스며들어 인간을 더욱 깊고 넓은 세계 속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 여정 끝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겸손이란 스스로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세계와 더 온전히 연결되기 위해 자신을 가장 정확한 자리에 놓는 일이라는 것을.

그러나 겸손이 나의 존재를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라면, 오만은 그 통로를 스스로 봉쇄해 버리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오만은 자신의 강점만 보면서 자신의 약점과 남들의 강점을 무시하게 만들어 결국 큰 실수를 저지르게 한다.


자신을 세계의 일부가 아니라 중심으로 착각하는 순간, 존재에 대한 인식은 왜곡되고 판단은 필연적으로 협소해진다.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믿는 태도는 더 배우려는 문을 닫아 버리고, 타인을 배움의 대상이 아닌 평가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그 결과 관계는 협력의 장이 아니라 우열을 가르는 경쟁의 장으로 변하고, 사유는 확장되지 못한 채 자기 확신 속에 고립된다.

더욱이 오만은 스스로의 오류를 점검하지 못하게 만든다. 겸손한 사람은 의심을 통해 자신을 바로잡지만, 오만한 사람은 확신을 통해 자신을 고정시킨다. 그래서 작은 판단의 균열이 교정되지 못한 채 누적되고, 마침내 삶의 방향 전체를 흔드는 치명적인 오류로 이어지게 된다.

높이 서 있다고 믿는 순간 시야는 넓어져야 하지만, 오만은 오히려 눈을 좁혀 절벽의 존재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오만은 자신을 크게 보이게 하는 태도가 아니라, 세계를 작게 축소시켜 버리는 인식의 왜곡이라 할 것이다.

이처럼 겸손과 오만의 갈림길을 사유의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결국 질문은 다시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나는 과연 세계 앞에서 얼마나 열려 있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확신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가?

겸손은 타인을 향한 예의이기 이전에 존재를 대하는 나 자신의 태도라는 사실을, 우리는 삶의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뒤늦게 깨닫곤 한다.

그러므로 이 글의 끝에서 다시 겸손을 말한다는 것은 하나의 교훈을 덧붙이기 위함이 아니라,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고 고쳐야 할 시선이 많다는 고백에 가깝다,


결국 겸손이란 이미 도달한 덕목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다가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세계는 여전히 넓고, 내가 마주하는 타인들은 여전히 많으며, 나의 이해는 아직 이 모두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고개를 낮춘다. 낮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넓게 보기 위해, 작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온전히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배움과 관계와 삶의 모든 길은 다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열리기 시작한다.

겸손은 나를 지우는 태도가 아니라, 세계를 더 크게 받아들이기 위해 나를 가장 정확한 자리에 놓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끝내, 더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존재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다.


Auguries of Innocence (순수의 전조)


- By William Blake (윌리엄 브레이크)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한 알 모래에도 세상은 있고

한 송이 들꽃에게도 천국은 있으니

그 무한을 손으로 만져 느끼는 순간

영원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Wednesday, February 11th.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