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할 줄 아는 사람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by James Kim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 가듯이 바라보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에서


마음이 부자는 누구인가?

많이 감동하는 사람이다.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어디로 여행을 가도 무엇을 구경하러 가도 늘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하찮은 들꽃 한 송이에도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감탄해 주는 감수성이 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무덤덤하게 마주하는 계절의 변화를 기다리고 감사하며 말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자연과의 공감력이 있다. 남들은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소한 자연의 변화에 진실한 감동을 느끼며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조용한 말로 감사함을 표시할 줄 아는 표현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작은 친절 하나에도 오래 마음을 데우고, 스쳐 가는 풍경 하나에도 삶의 의미를 길어 올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가장 넉넉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사람과 함께 길을 가다 보면 여행지는 더 이상 지도 위의 점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천천히 숨 쉬는 하나의 세계가 된다. 이름 모를 골목도,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의 그림자도 그 사람의 시선을 통과하는 순간 저마다의 이야기를 얻는다.

그와 함께 걷는 시간 속에서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여행은 먼 곳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조용한 순례가 된다.


작고 여린 들꽃 한 송이와 연초록의 새잎이 돋는 봄날의 나무의 수고로운 순간을 보고 경탄할 줄 아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과 여행하는 길은 신비로우면서도 편안하다.

그들과 함께라면 발걸음은 느려지지만 마음은 더 멀리 간다. 서둘러 목적지에 닿기보다 순간의 결을 오래 어루만지며 걷게 되고, 말없이 스쳐 가던 풍경들도 어느새 따뜻한 기억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그래서 그 길 위에서는 피로보다 평온이 먼저 쌓이고, 여행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잔잔한 빛처럼 여운이 남는다.

주변의 모든 것에 경탄하며 감사함을 표출하는 사람들과 여행하는 일은 늘 즐겁고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그들과 함께 하면 낯선 풍경조차 오래 알고 지낸 벗처럼 다정하게 느껴지고, 스쳐 가는 시간마저도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는 선물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마음의 결을 고요히 일깨우는 따뜻한 동행이 된다.


유난히 매섭게 추웠던 올해 겨울을 보내면서 포근한 봄날의 남도 여행을 생각하는 자체로 벌써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치 아직 오지 않은 봄날이 먼저 와 마음을 덮어 주는 듯, 얼어 있던 감정의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풀려 내린다. 그래서 나는 봄날의 그 길 위에서 마주하게 될 햇살과 바람, 그리고 꽃들의 인사를 미리 떠올리며 조용히 아름다운 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벌써 섬진강가 광양면의 여리면서도 고운 매화가 눈앞에 그려지며 달큼한 매화향이 피어오르고, 구례 산동의 노란 산수유가 아른거린다. 그러고 나면 섬진강 주변을 온통 하얀 순백색으로 물들이고 끝없이 펼쳐질 벚꽃길의 향연이 눈앞에 펼쳐진다.

공감력과 감수성을 가지고 자연의 변화에 감사함을 아끼지 않는 이들과 3월의 꽃 잔치에 함께 하는 행운을 또 가질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거듭 느끼게 될 것이다.


그 황홀한 봄날 남도의 꽃길을 자연을 사랑하며 감사하는 이들과 함께 천천히 거닌다면, 계절은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한 편의 서정시가 되고, 나와 일행은 흘러가는 역사와 같은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햇살과 바람, 꽃잎의 흔들림까지도 우리의 발걸음과 나란히 기록되어,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문득 마음을 열면 다시 재생되는 다정한 장면으로 살아날 것이다. 마치 지나온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언제든 돌아가 잠시 머물 수 있는 또 하나의 포근한 마음속의 고향처럼, 피를 흘리며 처절히 싸우던 투우가 마지막 숨을 고르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안식처인 케렌시아처럼 마음속에 오래 남아 기억될 것이다.


미국의 여류 시인 마야 안젤루는 말한다.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평가된다.”

너의 가슴 뛰는 순간들, 네가 삶을 최대한으로 산 모든 순간이 너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일 없이 무연히 흘려보낸 시간의 길이보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가슴이 활짝 열린 찰나의 깊이를 더 소중히 품어야 할 것이다. 그 벅찬 순간들이야말로 삶을 오롯이 빛나게 하는 진짜 숨결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의 무게는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감동적으로 깊이 살아 냈는가로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세월이 한 장 한 장 넘어간 뒤에도 우리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나이의 숫자가 아니라, 가슴이 환히 열리던 순간마다 남겨 두었던 따뜻한 감동의 빛의 흔적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빛들이 모여 한 사람의 생을 조용히, 그러나 오래도록 눈부시게 밝혀 줄 것이다.


“앙망(仰望)은 신적(神的)이다.”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仰望)은 신으로부터(神的) 온다.


마음속의 외침,

내 속에서 뭔가 바람처럼

느껴지는 감정....

이는 신으로부터 들리는 자연의 소리다.

이파리 사이로 바람을 일으켜 나무들을 정화시키듯

나와 나를 둘러싼 인간들 사이로

신은 바람을 일으켜 내게 신호한다.

- 지담


그리하여 하루의 끝에서는 사라짐의 고요를 배우고, 하루의 시작에서는 탄생의 빛을 배우는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 사소해 보이는 반복의 시간 속에서도 늘 처음 만나는 세계처럼 마음을 열어 두는 사람이 되어라. 일상 속에 존재하는 매일매일의 삶이 낡아지지 않는 경이(驚異)로 끊임없이 다시 피어나게 하라.

똑같은 삶을 살면서도 어떤 이는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힘들고 고독한 삶을 살아나가고, 또 다른 어떤 이는 감동과 환희에 가득 찬 생동감이 가득한 활기찬 삶을 살아나간다.

오늘 당신은 스스로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Monday, February 9th.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