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에 대한 정의

무엇이 우리의 삶을 증언해 줄 것인가.

by James Kim





“상상력을 동원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설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한다면

그들을 존중할 수 있다.

지성(智性)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 용어의 라틴어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프랑수와즈 사강

대담집 [답변들 Réponses]에서


지성을 나타내는 영어단어 intelligence(n.)의 라틴어 어원은 ‘사이’ ‘내부’라는 뜻인 inter와 ‘선택하다’ ‘읽다’라는 뜻인 leg가 결합된 intellego이다.

따라서 지성이란 ‘행간을 읽는다’ ‘사이에서 선택한다’는 뜻이 된다.


각박하게 돌아가는 현실의 세계에서 우리는 너무 자신과 자신 울타리 내의 이해관계에만 집착하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눈을 희번덕거리는 사람을 보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지성이란 단어의 어원을 따라 생각해 보면, 지성을 가진 사람이란 어떤 일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행간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그 사이에서 올바름을 선택하는 사람이라 했다.

그렇게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지 않고 타인의 자리에 서보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지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잡함을 이해하게 된다. 지성이란 결국 판단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서로를 함부로 단정하지 않기 위한 하나의 예의일지도 모른다.


상상력을 동원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설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한다면 그들을 존중할 수 있다.

지성이란 단순히 사물을 분석하거나 판단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의미를 읽어내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힘이 있을 때 우리는 타인의 말뿐 아니라 그 말 뒤에 숨은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다.


이처럼 이해하려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세상을 쉽게 단정하지 않게 된다. 사람의 삶에는 각자의 사정과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기쁨 속에서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오래된 상처를 안은 채 말한다. 그 미묘한 결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판단보다 먼저 이해를 선택하게 된다.

결국 지성이란 머리의 능력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상력과 공감,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조심스러운 존중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빛난다.


그런 지성을 지닌 사람은 세상을 크게 바꾸지 않더라도, 적어도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 조용한 힘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다운 삶이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서로를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 바로 그 태도 속에서 우리의 지성은 조금씩 성숙해 가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지성은 자칫 상대로 하여 마음의 문을 닫게 하고 괴리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지성은 본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해하고 이어 주기 위해 존재하는 힘이다. 그러나 따뜻한 마음이 결여될 때 그것은 오히려 차가운 불통의 벽이 되기도 한다. 날카로운 판단과 논리만 앞세운 말은 상대의 마음에 다가가기보다 그 마음을 위축시키고 물러서게 만든다. 그래서 지성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바탕에 사람을 향한 온기가 함께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사랑이 깃든 지성은 다르다, 그것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 말하지 않고, 함께 이해하기 위해 말한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기보다 먼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 한다. 그럴 때 지성은 차가운 칼날이 아니라 서로를 이어 주는 다리처럼 작용한다.


결국 인간의 지성은 사랑이라는 토양 위에서 가장 건강하게 자란다. 사랑이 없는 지성은 쉽게 사람을 멀어지게 하지만, 사랑이 깃든 지성은 서로 다른 마음 사이에도 조용한 공감과 신뢰의 길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행복할 수 있는 지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새로 핀 꽃을 보고 감탄하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다.


가슴이 살아 있을 때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도 기쁨을 발견한다. 어스름 아침에 창가에 스며드는 햇살 한 줄기, 길가에 이름 없이 피어난 작은 꽃 하나에도 마음이 조용히 열리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에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이미 세상의 아름다움이 먼저 가슴에 와닿는다.


어쩌면 삶의 참된 풍요는 거창한 성취나 지식의 축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아름다움에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슴이 따뜻하게 깨어 있는 사람에게 세상은 늘 새롭게 피어나는 정원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가슴이 메마르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겨울을 이겨내고 가냘프게 피어나는 매화 한 송이를 보고 감탄할 줄 아는 마음, 누군가의 작은 기쁨과 슬픔에 함께 기뻐하고 눈물 흘릴 줄 아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한, 우리의 삶은 여전히 살아 있는 빛으로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외로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존재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다. 외로움은 단순히 사람과 떨어져 있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과 마주 서는 시간이다. 우리는 많은 관계와 일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는 많지 않다.

그러나 외로움이 찾아올 때 비로소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금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갈망하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조용히 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성찰의 시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조금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타인의 기대나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외로움은 인간을 고립시키는 감정이기보다, 오히려 자기 존재의 깊은 뿌리로 안내하는 하나의 통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외로움을 견딜 줄 아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고, 그러한 사람만이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가 타인과도 더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우리 모두가 늙는다. 그리고 언젠가 자기 차례가 오면 죽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늙음이나 죽음이 아니다. 지성이 없는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지성이 녹슬면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시간에 맞서는 젊음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맑은 지성의 마음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세상의 작은 아름다움에 놀라고, 사람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기울이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볼 수 있는 그 깨어있는 지성 말이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조용히 내려앉지만, 마음의 빛까지 늙게 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끝까지 간직해야 할 것은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과 사람을 따뜻하게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그 빛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결코 녹슬지 않는다. 오히려 세월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맑아져, 늦은 저녁의 하늘처럼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빛을 오래도록 품게 될 것이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증언해 줄 것인가.

우리의 재산인가. 철학인가. 아니면 일기나 작품인가.

아니다.

오직 지성을 품은 사랑만이 우리의 존재를 영원히 증명해 줄 것이다.


오늘 아침, 하늘이 맑다.




Sunday, March 8th.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