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풀은 저절로 푸르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 존재하는 동안에
죽음은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죽음이 우리를 찾아와 존재하는 순간
우리는 더 존재하지 않는다.”
-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영어: Epicurus, 그리스어: Έπίκουρος, 기원전 341년 ~ 기원전 271년)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에피쿠로스 학파(Epicurianism)라 불리는 학파의 창시자다.
에피쿠로스에게서 철학 목적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얻는 데 있었다. 그가 말하는 행복하고 평온한 삶은 평정(ataraxia), 평화, 공포로부터의 자유, 무통(無痛, aponia)의 특징이 있다.
에피쿠로스는 도덕적 지침으로 개인의 피해 최소화와 행복의 극대화를 강조했다.
그는 다음처럼 말했다. “현명하고 바르게, 잘 살지 않으면 행복한 삶을 살기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지 않으면 현명하고 바르게, 잘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출처: 위키백과)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마음의 평안이다”라고 말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평안한 상태가 아타락시아(Ataraxia)’라 했다.
화창한 봄날이 시작되는 아침에 깨달음을 얻지 못한 나는 심각하게 고민한다. ‘언제쯤 나는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평안한 상태가 유지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하고.
삶은 고해(苦海)의 바다를 건너는 험난한 여정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저마다 작은 배 하나씩을 이 넓은 바다 위에 띄운 채 끝이 보이지 않는 물결 위를 항해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어떤 날은 파도가 거세어 몸과 마음이 뒤흔들리고, 어떤 날은 바람조차 멎어 노를 젓는 힘마저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긴 항해 속에서도 가끔은 잔잔한 물결 위로 햇살이 부서지고, 먼 수평선 너머에서 희미한 빛이 희망을 보여준다.
어쩌면 삶의 의미는 그 거친 바다를 완전히 벗어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물결 속에서도 다시 노를 쥐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저 희망의 항구를 향해 조용히 배를 저어 간다.
비록 그 항구의 모습이 또렷이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희미하게 깜박이는 등대의 불빛 한줄기가 길을 밝히고 있다. 때로는 파도에 밀려 잠시 방향을 잃기도 하고, 거센 바람에 노를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다시 고개를 들면 수평선 저 멀리 어딘가에서 잔잔한 빛이 우리를 비추어주고 있음을 느낀다.
삶이란 결국 그 희미한 빛의 존재를 믿고 한 번 더 힘을 내 노를 젓는 용기를 내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루하루 물결 위를 건너다보면, 어느 날 문득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멀리 있다고 여겼던 희망의 항구가 사실은 우리 마음이 포기하지 않는 바로 그 자리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을.
에피쿠로스는 말하지 않는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죽음은 우리가 살아 존재하는 동안에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고.
그러니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평안을 잃은 불안한 삶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은 종종 아직 닿지 않은 불안한 미래의 그림자를 붙잡고 스스로를 괴롭히지만, 실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언제나 이 짧고도 선명한 현재뿐이다.
바람이 스치는 아침의 봄 햇살과, 조용히 숨 쉬는 이 시간의 따스한 온기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이 얼마나 소박하고도 귀한 선물인지 깨닫게 된다.
그렇게 현재의 소중한 순간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음속에서 두려움은 서서히 잦아들고, 대신 잔잔한 평온, 아타락시아가 우리의 내면에 천천히 자리 잡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죽음을 초연히 바라보는 지혜란 먼 곳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을 깊이 사랑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이 나에게 다가와 존재하는 순간,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음 써야 할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의 그림자가 아니라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는 살아있는 삶의 시간이다.
우리는 종종 닿을 수 없는 내일의 끝을 상상하며 오늘의 소중한 것들을 흘려보낸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삶은 언제나 이 순간의 숨결 속에서만 우리에게 주어진다. 오늘 아침 찬란히 스며드는 햇살 한 줄기 속에 수줍게 노란 산수유 꽃이 피어나는 작은 평온이야말로 우리가 실제로 만질 수 있는 삶의 전부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죽음을 멀리서 두려워하기보다는, 오늘이라는 하루를 차분히 살아내는 일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배우는 것이 더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어쩌면 삶과 죽음은 서로 등을 돌린 적이 없는 동일선상의 두 순간인지도 모른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등불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새벽이 밝아오기 때문에 등불을 끄는 것일 뿐이다.”
임제 의현(臨濟義玄)도 세월의 흐름을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의 삶을 담담히 받아들이라는 선적(禪的)인 울림이 있는 선시를 다음처럼 말하지 않았는가.
春來草自靑 ‘봄이 오면 풀은 저절로 푸르다’
봄이 오면
풀은 스스로 푸르게 되고
꽃이 피면
향기는 바람을 따라 흐른다
억지로 구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모든 것은
제 길을 따라 드러난다.
간절히 기다리던 나의 봄이 곁으로 오고 있다.
남도에 피기 시작하던 매화와 산수유가 내가 사는 아파트 화단에도 피기 시작하면서 향기가 바람을 따라 흐른다.
겨우내 거실에 들여놓았던 화분을 베란다로 옮겨 놓았다.
푸르름이 한결 싱싱해 보인다.
아름다운 봄날이 서서히 시작하고 있다.
모두가 편안한 아타락시아(Ataraxia)상태로 봄을 맞이하길 바란다.
Tuesday, March10 th.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