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은 나를 아는 일부터

스스로를 아는 자는 명철하다

by James Kim






“사람을 아는 일은 바로 스스로부터 아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자신이 바른 곳에 서 있지 않다면

다른 사람을 바르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비탈진 곳에 서 있으면 상대도 비뚤어지게 보이는 법이고,

자신이 진흙탕에 서 있다면 상대 역시 흙투성이로 보일 수밖에 없다.”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스스로를 아는 자는 명철하다.

- 조윤제 ‘천년의 내공’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라 했다. 이 말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아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지식이란 많이 아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솔직하게 모른다고 인정하는 태도, 그 정직함과 분별력이 바로 참된 앎이라는 뜻이다.

공자는 지식을 머리에 쌓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지적인 성실함을 더 중요하게 본 것이다. 마치 맑은 거울이 밝은 햇빛 속에서 먼지를 감추지 않듯,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자리 어떤 경우에서도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가르침이다.


중국의 공자에 이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안다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고 알고 있다. 어쩌면 바로 그 점 때문에 내가 더 지혜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진짜 지혜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 두 철학자의 생각을 함께 묶으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는 사람은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배움은 언제나 ‘나는 아직 모른다’는 겸손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많이 알게 될수록 오히려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넓은 세계를 보게 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말이 점점 겸손해지고 배움은 점점 깊어진다.

우리가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도 멈춰버린 배움에 대한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참된 지혜는 이렇게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다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배우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성장한다.’


공자와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조용히 들려주는 말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아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겸손은 지혜가 머무는 자리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배움이란 지식을 쌓아 올리는 일이 아니라 마음의 그릇을 깨끗이 비워 새로운 진실이 담길 자리를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일찍이 소크라테는 말하지 않았는가.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단순히 자신의 성격이나 능력을 파악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 무지와 한계까지도 정직하게 바라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알아차려야 한다.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한 채 얻은 지식은 방향을 잃기 쉽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성공은 오래 마음을 지켜주지 못한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이며, 잘못을 깨달으면 고칠 줄 아는 정직함이며,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묵묵히 걸어가려는 담담한 결심이다.

자기 성찰이란 자신을 심판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올바로 이해하는 일이다. 그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타인에게도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도 한층 부드러워질 수 있다.


세상에 모든 일은 개인이든 가정이든 아니면 하나의 국가이든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곳에 해당되는 자신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만약 스스로를 잘 지키고 다스린다면 어느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다. 하지만 속에서부터 부패하고 무너진다면 외부의 공격을 불러들이게 된다.


상서(尙書)에 이르기를 ‘하늘이 주는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에는 살아갈 수 없다’고 적혀있다.

이 말이 전하려는 뜻은 결국 외부에서 오는 불행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무릇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야 남들이 업신여기며, 집안 역시 스스로 무너뜨린 후에야 남들이 무너뜨리며, 나라 역시 스스로를 친 후에 다른 나라가 공격하는 것이다.’

(천년의 내공 253쪽)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숱한 어려움을 만날 수 있다. 질병이나 사고, 시대의 변화 같은 것은 개인이 온전히 통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교만, 욕심, 분노, 어리석은 판단처럼 자기 안에서 비롯되는 재앙은 대부분 스스로의 경계와 성찰로 막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불행을 피하는 방법을 운명을 탓하는 데서 찾지 않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데서 찾으려 한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온전히 삶을 지키며 바르게 살아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밖에서 오는 폭풍을 걱정하기보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균열을 먼저 살피는 일일지도 모른다.

결국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운명이나 팔자가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자신을 바로 세우는 사람에게는 많은 화가 다가와도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히고 그 몸을 힘들게 하며 그 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하였다.

이 말은 시련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시련을 통해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려는 뜻이 담겨있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공부는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지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일생에는 피할 수 없는 여러 가지의 어려움이 반드시 언젠가는 찾아온다. 그러나 그 비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더 단단해진 뿌리와 더 깊어진 마음이 남는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고난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일 것이다. 스스로 마음을 바로 세우는 사람은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이유를 알고, 흔들리더라도 끝내 쓰러지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사람은 어떤 일을 겪었는가가 아니라,

그 일을 겪으며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결국 인생이란 세상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라 자기 마음 앞에서 얼마나 맑게 부끄러움 없이 서 있을 수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서시(序詩)’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Thursday, March12th.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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