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거울 앞에 서는 일

어린 시절 마음속에 남겨진 미완의 문장

by James Kim






“남녀가 사랑할 때

심리학적으로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강한 호감을 갖게 된 것은

사실 상대방 자체에 대한

호감보다는 자기 자신들의 모습을

상대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사랑의 본질은

나르시시즘(narcissism)

또는 자기애(自己愛, self-love)라고 말한다.


-최광현 ‘가족의 두 얼굴’에서


‘가족의 두 얼굴’이라는 책을 쓴 트라우마 가족치료 연구소장 최광현 교수는 ‘우리는 익숙하고 친숙한 것에 편안해하고 이끌린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의 경험만큼 익숙한 것도 없다. 그래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도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상대방을 통해 어린 시절 경험한 가정의 모습이 재현되기를 바란다.

이것을 ‘귀향증후군(the going home syndrome)이라고 부른다.’하고 기술했다.


남녀가 서로를 낯설게 여기지 않으면, 즉 상대에게서 자신의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면 편안해지고 끌리는 것이 사랑의 일반적인 법칙이라 한다.

그것은 마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두 마음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온 것과도 같은 느낌일지도 모른다. 낯선 얼굴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경계하지 않고, 처음 만난 자리인데도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말이 편안하게 이어지는 것은 서로의 내면 어딘가에 비슷한 온도와 결이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전혀 다른 세계보다는,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언어를 가진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린다. 그래서 사랑은 거창한 운명이라기보다, 서로의 외로움과 생각과 상처의 모양이 조용히 닮아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랑이란 서로를 바꾸려는 노력이 아니라 “아, 당신도 이런 마음이었군요.” 하고 서로를 알아보는 작은 안도의 순간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의 공감일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무의식과 억압의 방어 기제에 대한 이론, 환자와 정신분석자의 대화를 통하여 정신 병리를 치료하는 정신분석학적 임상 치료 방식을 창안했다.

그는 '무의식' 연구의 선구자로서 무의식이란 개념을 대중화하고, 정신이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구성되었다고 했으며 일반인이 듣기에는 어려운 말이지만 이드(id), 자아(에고 ego), 초자아(超自我, super-ego)라는 개념도 제시했다.


그의 생각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완전히 새로운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비친 또 하나의 ‘나’를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대의 미소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상대의 상처 속에서 내가 견뎌온 시간의 그림자를 발견할 때, 마음은 비로소 문을 연다.

어쩌면 사랑이란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는 일이면서도 동시에 자기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는 거울 앞에 서는 일과도 같다. 그 거울 속에는 내가 잊고 있던 다정함이 있고, 내가 갈망하던 이해가 있으며,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이 조용히 서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 사람만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더 깊은 자기 자신에게로 걸어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사랑은 타인을 향한 감정이면서도, 동시에 자기 영혼이 자기 자신을 알아보며 짓는 가장 조용하고도 깊은 미소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가족과의 경험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는 종종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을 재현해 줄 사람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어린 날의 기억이 보이지 않는 설계도처럼 남아 있어, 훗날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그 익숙한 구조를 다시 짓게 되는지도 모른다.

따뜻한 기억을 가진 사람은 그 온기를 다시 느끼고 싶어 하고, 상처를 안고 자란 사람은 알지 못하는 사이 그 상처의 모양과 닮은 관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도 한다. 그것이 행복 이어서라기보다, 익숙함이 주는 묘한 안정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오래전 끝나지 못한 감정의 이야기들을 다시 써 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린 마음이 다 말하지 못했던 서운함을 이제야 이해받고 싶어서, 그때 받지 못했던 다정함을 뒤늦게라도 얻고 싶어서 말이다.

그러니 사랑이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어린 시절 마음속에 남겨진 미완의 문장을 어른이 된 우리가 다시 조용히 완성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결코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어도 왜 어린 시절 가족의 모습으로 돌아가 힘든 인생살이를 반복하려 하는가? 이것은 어린 시절 풀지 못한 가족 간 갈등의 고리를 다시 한번 풀고자 하는 무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사람의 마음은 상처를 피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그 상처가 처음 생겨난 자리로 다시 돌아가 보려는 이상한 습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 다시 서면 이번에는 다르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때 듣지 못했던 한마디를 이제는 들을 수 있을 것만 같고, 끝내 풀지 못했던 매듭을 조금은 느슨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희미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감정의 파도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간다. 그것은 고통을 즐겨해서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이번에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조용한 희망이 아직 꺼지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의 반복과 순환은 어리석음의 증거라기보다, 끝내 화해하지 못한 과거의 자신과 언젠가는 화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오래된 기도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우리가 반복하는 관계와 삶의 패턴이 단순한 우연이나 운명이 아니라, 어린 시절 풀리지 않은 감정과 무의식의 흐름일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당신이 무의식을 의식하게 만들기 전까지,

그것은 당신의 삶을 지배할 것이고

당신은 그것을 운명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의 만남과 반복되는 순환의 관계는

과거를 다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이해하고 넘어가기 위해

우리 삶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치유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고 아름다운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이 봄날에, 아무도 과거의 인연에 묶여 아픔 속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늘 피어나는 꽃들처럼, 우리 마음도 지나간 계절의 슬픔은 바람에 띄워 보내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찬란한 봄을 맞기 바란다.




Saturday, March 14th.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