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이야기로 수리비를 안 낸 썰

내 앞의 사람에게 화내기 전에 체크해 볼 것

by 이진호

2006년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하며 큰맘 먹고 벽걸이 텔레비전을 샀다. 당시 벽걸이형이 대중화되던 시기였고, 마침 회사에서 단체 구매로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었다. 거실 벽에 걸린 텔레비전은 그 자체로 새집의 분위기를 완성해 주는 물건처럼 느껴졌다.


새 집에서의 설렘도 적응이 될 무렵, 텔레비전의 보증기간이 끝나자마자 고장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리모컨이 작동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함부로 다뤄서 그런 줄 알았는데, 텔레비전 안의 수신기가 원인이었다. 소비자가 잘못 다룰 여지가 없는 부품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점이 납득되지 않았다. 그것도 보증기간 직후 문제가 발생한 것에 대해 약이 올랐지만, 수리 기사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당시 나 역시 대형 선박의 보증 업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내 잘못이 아닌 결함 때문에 고객에게 욕먹는 게 어떤 기분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차분하게 내 입장을 전했다. 보증기간이 며칠 지났을 뿐이고 벽에 걸려 있던 물건이 고장 나는 건 사용자 과실로 보기 어렵지 않으냐는 논리였다. 다행히 내 주장은 받아들여졌고, 수리비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후에도 다른 부품이 돌아가며 고장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그때마다 나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고객센터를 통해 설득했다. 소비자가 잘못이 아닌 결함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회사에 좋을 게 없다는 소심한 협박도 동원했다. 내가 진상리스트에 올랐을지 모르지만, 매번 무상으로 수리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수리 때 수리기사는 “무상 수리는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해했다. 나라도 그렇게 말했을 거다. 충분히 도움을 받았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텔레비전은 또 말썽이었다. 이번엔 화면은 켜지지 않고 소리만 나왔다. 이미 여러 차례 예외적인 서비스를 받은 터라 더 이상 무상 수리를 요구할 명분도 없었다. 수리비를 낼 각오를 하고 방문 수리를 신청했는데 이제는 낯익은 기사가 방문했다.


점검을 위해 텔레비전을 켜보니 깜깜한 화면에 야구 중계 소리가 나왔다. 점검을 하던 기사님의 표정이 살짝 밝아지며 말했다.


“야구 좋아하시나 봐요.”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사람도 야구팬이라는 것을.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부부가 야구를 못 봐서 얼마나 답답했는지 아냐?", "오죽하면 화면도 안 나오는 TV를 켜놓고 소리로 중계를 들었다."라며 나도 야구팬임을 은근히 어필했다. 우리가 같은 팀을 응원한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대화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게다가 그는 사회인 야구를 할 정도로 야구광이었다. 나는 사회인 야구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고, 그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풀어갔다. 수리비 얘기는 꺼낼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럴 맘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수리가 마무리되었고, 공구를 챙기던 기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지난번 수리가 재발한 것으로 처리할 테니 비용은 내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그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재량이었을 것이다. 나는 진심 감사함을 표했고 야구 잘하시라는 말로 배웅했다.


기사를 보내고 돌아서자 아내가 물었다.


“일부러 그런 거지?”


수리비를 깎아 보려고 의도적으로 야구 이야기를 나눈 거 아니냐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100% 연기는 아니었지만, 솔직히 이런 결과를 기대한 것도 사실이었다. 불순한 계산과 인간적인 순수함 사이, 아마 그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이런 태도는 회사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배운 것이었다. 선박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돈이나 기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 그럴 때 마지막으로 남는 방법은 결국 인간적인 관계였다. 그것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소통하면 의외의 해결책을 찾은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그전에 신뢰가 쌓여야 한다.


그 뒤로 그 텔레비전은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하긴 주요 부품을 거의 다 바꿨으니 그럴만했다. 시간이 지나며 마음에 남은 건 수리비를 아꼈다는 것보다 그렇게 된 과정이었다.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그 불쾌함을 누구에게 향해야 하는지는 늘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는 것. 적어도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내서 상황을 악화시킬 필요는 없는 거다. 많은 상황에서,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원인 제공자가 아니라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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