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대신 선택을 남겨둔 이야기
나는 내가 해보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데 조심스러운 편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다거나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 이해되지 않은 내용을 전달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잘하진 못하더라도, 가능하면 내가 먼저 해보거나 충분히 이해하려고 애쓴다.
큰아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였다. 영어 공부를 하는데 말하기 연습을 할 대상이 없어 힘들다고 했다. 읽기, 쓰기, 듣기는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상대 없는 말하기는 한계가 느껴진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전화 영어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하지만 아이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나와 비슷했다. 새로운 걸 시작하기 전에 한 번 더 따져보고, 괜히 시작했다가 흐지부지될까 걱정하는 성향 말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해보겠다고 했다. 아빠가 먼저 해보고 괜찮으면, 그때 너도 해보면 어떻겠냐고. 그 말에는 아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알아보니 문제는 시간을 내는 거였다. 아침은 늘 분주했고, 저녁은 일정이 불규칙했다. 말만 해놓고 내가 못하게 되면 그게 더 마음에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기상 시간을 앞당겨서 시간을 만들었다.
그렇게 아침마다 전화로 영어 회화를 했다.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다. 영어를 늘 쓰던 직업일 때는 하지 않던 영어 공부를, 이제는 영어 쓸 일도 없는데 하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전화영어가 나한테 큰 성과가 있었던 건 아니다. 주제를 바꿔가며 대화를 나눠도 늘 쓰던 표현만 반복하게 됐다. 역시나 동기가 부족하니 당연했다.
두세 달쯤 지나서야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가 해보니까 전화영어도 괜찮더라. 원하면 너도 해보라고. 아이는 자기 일정에 맞춰 매일 고정적으로 시간을 낼 수 있는 시간을 정했고, 그렇게 전화 영어를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나는 더 이상 잠을 줄여가며 영어 회화를 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바로 그만둘 수도 없었다. 내 입으로 전화영어가 좋다고 했으니 말이다. 결국 나는 그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전화 영어를 했다. 다른 그럴듯한 이유를 찾을 때까지.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영어를 쓸 일은 없지만,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영어 공부를 계속하기로 했다. 대신 앱을 결제했다. 꾸준함을 유지하는데 돈 만한 게 없다. 구성이 체계적이고 시간도 자유로워서 좋았다. 내가 폰으로 영어를 연습하는 걸 몇 번 보더니, 어느 날 아이가 내게 말했다. 자기도 그 앱 결제해 달라고.
이제는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영어가 능숙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빠로서 작은 역할은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능력과 상관없이 의사소통은 기본 역량인데, 나에게 영어는 늘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아이들만큼은 영어 때문에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 점에서는 도움을 준 거 같아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