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퇴소식 날의 기억
남자들이 쉽게 잊지 못하는 날짜가 있다. 군입대 날이다. 나는 1995년 2월 7일, 춘천 102 보충대에 입대했다. 2월에서 3월로 이어진 6주 동안 강원도의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다. 겨울의 끝자락이었지만 강원도의 추위는 여전히 매서웠다.
낯선 훈련소 생활만큼 기억에 남은 건 무로 만든 반찬이었다. 무생채, 뭇국, 무나물, 깍두기, 무조림까지. 무로 만들 수 있는 반찬이 돌아가며 나왔다. 식판 위에 무가 들어간 반찬이 하나쯤은 늘 있었고, 어떤 날은 모든 반찬에 무가 들어가 있기도 했다. 처음엔 우연이라 여겼지만, 이런 식사가 반복되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동기들 사이에서는 오늘 무 반찬이 몇 개였는지가 자연스러운 대화거리가 되었다.
그중에서 풀리지 않던 궁금증은 그 많은 무의 출처였다. 우리가 먹는 양을 생각하면 트럭으로 실어 날랐어야 할 거 같은데, 그런 트럭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취사장 안에 끝없이 무가 나오는 항아리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취사장 뒤 낮은 언덕에 시선이 멈췄다. 꼬깔콘 모양으로 쌓아 놓은 짚단이 띄엄띄엄 늘어서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게 눈에 띄었다. 그제야 그 짚단 밑 땅속에 무를 저장해 두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취사장을 지날 때마다 그 언덕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가 무 반찬에 질려가는 만큼 꼬깔콘 짚단도 사라져 갔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훈련소 생활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퇴소식 날이 다가왔다. 훈련소를 떠나는 게 더 힘든 시작이라는 건 다들 알고 있었지만, 고생했던 이곳을 떠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설레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구를 만나고 무엇보다 사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도 컸다.
막상 퇴소식 당일이 되자, 들뜬 마음에 하고 싶은 말들은 뒤죽박죽 엉켜 버렸다. 잔뜩 먹고 싶던 사제 음식도 뒷전으로 밀려났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훈련소에서 겪은 무용담과 바깥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면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니가 좋아하는 달랑무 김치 만들어 왔어"
총각무 또는 알타리무라고도 부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달랑무라고 불렀다. 그거 담그느라 밤잠도 못 주무셨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6주 내내 무 반찬에 질릴 대로 질린 터였다.
결국 한 입도 먹지 않았다.
어머니가 서운하실 걸 생각하면 몇 입쯤은 먹고 맛있다고 했어도 됐을 텐데, 그날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면회가 끝나고 가족들이 돌아간 뒤에야 비로소 그 일이 마음에 걸렸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총각김치를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서운하셨을 텐데 내색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의 얼굴과 함께. 자식을 키우고 나서야 그날의 마음이 조금씩 짐작된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