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성인이 된 거 같았다. 월급이 들어오고, 크고 작은 선택들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그래도 삶의 중심이 단번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서울에 올라왔다. 오래 살아온 고향이었고, 사람들도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울산으로 다시 내려갈 때면 어머니는 장난처럼 휴게소에서 우동 사 먹으라며 용돈을 쥐여 주셨다. 나는 웃으며 받았다. 이제는 내 지갑이 그렇게 아슬아슬하지 않지만, 어머니의 기분을 맞춰드리고 싶었다. 경제적으로는 독립했어도 마음 한쪽에는 아직 아들로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서울에 올라와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흔한 드라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 아이가 있는 이혼녀와 결혼하겠다고 하고, 그 선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와 갈등하는 이야기였다. 특별할 것 없는 장면이었는데, 그때 문득 이렇게 물었다.
“엄마, 만약에 내가 저렇게 결혼한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
어떤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저런 상황에서 우리 엄마는 어떻게 반응하실까, 그게 알고 싶었다. 어머니는 잠시 화면을 보다가,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널 삼십 년 가까이 키웠는데, 네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건 엄마의 선택이기도 한 거지.”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말은 오래 남았다. 반대도 허락도 아닌, 받아들인다는 말이었다. 자식을 성인으로 키워냈다면, 그 이후의 삶은 지켜보는 것이라는 태도. 그날 어머니한테 들은 그 한 문장은 마음속에 남았다.
이제 내가 부모가 되고, 집을 떠난 아이들을 생각할 때면 그 말이 다시 떠오른다.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동안 키워온 시간을 믿어보려 한다. 붙잡지 않고, 대신 믿는 것. 그 말은 지금도 여전히, 조용히 나를 붙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