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고 믿었던 시간들
큰 딸, 지원이가 뱃속에 있는 동안은 병원 가는 일이 늘 비슷했다. 의사 선생님이 간단한 문진을 하고 초음파 화면을 살펴본 후 모두 정상이라는 말을 듣는 게 전부였다. 모두 정상이라는 말, 반복될수록 감사함에서 당연함으로 변해갔다. 심지어 굳이 검사를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그런 '당연함'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둘째 지민이 때는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임신기간의 초반을 지날 무렵, 늘 같은 말을 하던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왼쪽 신장이 부어 있다는 거였다. 신장에서 방광으로 오줌이 내려가는 요관이 막힌 것 같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는 그때 처음, 빠르게 지나가던 초음파 화면이 몸속 장기를 하나씩 살펴보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괜찮아질 수도 있으니 한 달 뒤 다시 보자고 했다. 우리 부부는 불안했지만, '그래, 분명히 괜찮아질 거야'라며 서로를 다독였다.
한 달 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초음파 화면을 보던 의사 선생님은 곧바로 서울 아산병원에 연락했고, 우리에게 내일 바로 그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우리 부부가 휴가를 낼 수 있는지는 묻지도 않았다. 한가하게 그런 거 따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정밀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같았다. 이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라는 의사 선생님도 같은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임신 중에는 조치할 방법이 없으니 태어난 뒤 수술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다만 그전에 왼쪽 신장이 손상되어 제기능을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후 겪은 일을 여기 옮길 수 없지만, 우리 부부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3월 13일 아침. 지민이는 그 큰 병원에서 유난히 작은 몸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후 지민이는 병원을 자주 오갔다. 그때마다 지원이는 엄마와 떨어져 할아버지, 할머니와 보냈다. 지원이도 아직 어린아이였지만,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참고 견뎠다.
한 달 반이 지나고 수술 날짜가 다가왔다. 수술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던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다. 요관의 막힌 부위를 잘라내고 다시 잇는 수술이라고 했다. 갓난 아이의 요관이 볼펜심 안쪽 지름보다 작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상상도 안 되는 그 과정을 더 들어봐야 불안만 커질 거 같아서였다. 그냥 의사 선생님의 실력을 믿는 편이 나았다.
수술 당일 수술실 앞에서 지민이를 안아 들었다. 왼손으로 머리를 받쳤는데 아이의 발끝이 내 팔오금에도 닿지 않았다. 그렇게 작은 아이를 간호사에게 건네는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대신 들어갈 수 없는 자리, 대신 아파 줄 수 없는 상황 앞에서 그저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술이 진행되는 몇 시간은 기억이 없다. 어떤 장면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 부부는 간절한 마음에 말도 아끼며 그 시간을 버텼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이제는 회복을 기다리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회복 후 퇴원한 후에도 그 병원을 갈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던 큰 병원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다행히 지민이의 수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년이 지나 정밀 검사를 받았을 때, 부어있던 왼쪽 신장도 기능을 하고 있고 수술 부위가 모두 정상이라는 감사한 결과를 받았다. 그렇게 긴 과정을 통해 '아무 이상 없다'는 말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