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새로 만든 전산시스템의 테스트를 맡았다. 오류가 있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실제로 써 보면서 정리하는 일이었다. 혼자서 모든 기능을 확인해 보기에는 한계가 있어 부서 내 후임들을 불러 협조를 구했다.
앞으로 2~3주 동안 새 시스템의 기능을 다양하게 써 보고, 문제를 발견할 때마다 메모해 두었다가 나중에 모아 달라고 했다. 다들 바쁜데 이 일이 또 하나의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별도의 형식 없이 각자 편한 대로 적어서 주면 된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 결과물을 받아보니, 의도하지 않았던 장면이 펼쳐졌다. 정리한 방식이 사람마다 달랐다. 화면 캡처에 문제점까지 정리한 사람이 있었고, 문제점 리스트를 이메일에 적어 보낸 사람도 있었다. 급한 일이 있어 미안하다며, 업무 수첩에 적어 놓은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제출한 후배도 있었다.
어떤 형태로 만들었느냐는 건 잘잘못을 따질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양식을 정해 주지 않았으니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만 알아볼 수 있다면, 내 부탁을 충실히 이행한 결과물이었다. 다만 그 안에서, 각자 일하는 스타일이 분명히 보였다.
그런데 그중 A 대리의 결과물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내민 것은 조그만 포스트잇이었다. 삐뚤삐뚤한 손글씨에, 찍 긋고 고친 흔적들. 무엇보다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포스트잇을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내용이라면, 최소한 읽을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는 특별한 양식은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따지는 말투라기보다,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양식이 없으니 편하게 적은 것뿐인데 뭐가 문제냐는 말이었다. 그가 우리나라 최고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 앞의 이 포스트잇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전달의 문제였다.
나는 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서 물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느냐고. 조용히 그렇다는 대답이었다. 나는 그냥 포스트잇을 받아 들고, 수고했으니 돌아가도 된다고 말했다. 그게 그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돌아가는 A 대리의 뒷모습을 보는데, 왜 그가 우리 부서로 옮겨 오겠다고 했을 때 이전 부서에서 순순히 보내주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배려라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상대방의 심정을 한 번쯤 헤아려 보는 태도다. 그것은 대개 아주 사소한 데서 드러난다. 내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의 일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적은 전화 메모를 받을 사람이 더 궁금해할 건 없을지. 사소하지만 이런 마음씀이 배려다. 하나하나는 크게 문제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런 일들이 쌓이면서 결국 사람의 평판이 된다.
탁월한 천재성이 필요한 순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내가 겪어 온 대부분의 일은 뛰어남보다 지속을 요구했고, 성과보다 관계 위에서 굴러갔다. 달나라로 가는 로켓을 만드는 일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 사소한 태도만으로도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평가는 만들어진다.
그 포스트잇을 건네주었던 그 대리는 결국 다른 회사로 이직을 갔다고 들었다. 그 이후의 소식은 알지 못한다. 나는 배려가 실종된 상황을 겪을 때마다 그가 생각난다. 배려는 말로 설명되기보다, 결국 사소함으로 남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