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다른 상황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기억에 남은 일이 하나 있다.
경비실에서 우리 집으로 온 물건이 두 개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무렵에는 경비실에서 택배를 대신 받아주던 시절이었다. 지금보다 택배 물량이 훨씬 적었으니 가능했을 거다.
기다리던 택배가 없어서 무엇이 왔는지 궁금했다. 일단 내려가 봐야 했다. 경비실에는 명절 선물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김 선물세트였고, 다른 하나는 겉으로 봐서는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가벼운 물건이었다. 각각의 포장에 업무상 연락을 주고받던 두 업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택배로 온 것도 아니고, 직접 와서 경비실에 두고 간 물건들이었다. 두 업체에서 어떻게 같은 날 보냈는지는 모르겠다. 내 기억이 조금 왜곡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만약 비싸 보이는 물건이었다면, 오히려 판단은 쉬웠을 것이다. 곧바로 반송했을 테니까. 그런데 이건 그렇지 않았다. 김 선물세트는 명절이면 흔히 오가는 물건이었고, 다른 하나도 겉으로 보아 귀한 선물은 아닌 듯 보였다. 이 정도를 돌려보내는 게 너무 야박한 건 아닐까, 괜히 관계를 어색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물렀다.
하지만 원칙은 간단했다. 내용물과 상관없이, 업체로부터 명절 선물을 받아서는 안 되는 거였다. 포장을 뜯어볼 필요도 없었다. 받은 그대로, 두 개 모두 등기로 반송했다.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는, 나 나름의 방식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행동을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당신 남편은 이런 사람이라는 걸, 말이 아니라 태도로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며칠 뒤, 두 업체에서 각각 연락이 왔다. 대략, '별거 아닌데 반송까지 했냐'는 내용이었고 나는 마음만 받겠다고 인사했다. 그런데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상대의 말투가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심스러워졌다고 해야 할지, 선을 인식하고 있다는 기색이라고 해야 할지. 아, 이 사람은 함부로 대해선 안 되겠구나 하는 그런 인식이 나에게 전해지는 듯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내 느낌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한 행동이 별스러운 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후 직장 생활을 하며,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해 심각한 상황에 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무서운 건, 그런 사람들도 처음부터 큰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어쩌면 넘어갈 수도 있는 작은 선을 넘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 작은 경험이 기준을 조금씩 흐리게 만들고, 결국 돌아오기 힘든 지점까지 데려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켜야 할 선은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 선의 무게가 아무리 가벼워도 말이다. 그게 마음 편하다. 설명할 필요도 없고, 스스로 부끄러울 것도 없다. 당당하다는 건 큰소리를 낸다는 뜻이 아니라, 지킬 걸 지키는 행동이라는 걸 그날의 작은 선택을 통해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