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보증업무를 하던 시절, 나의 하루는 늘 이메일로 시작되었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아웃룩이 열리는 동안 오늘은 또 어떤 문제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자연스레 긴장했다. 화면이 열리고 새 메일 목록이 주르륵 올라온다. 그중에서도 ‘Re:’라는 두 글자가 붙은 제목은 유난히 눈에 걸렸다. 대개는 내가 전날 보낸 메일에 대한 회신이었고, 그 회신은 대부분 내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이메일은 글자일 뿐인데, 거기에는 분명 기류가 있었다. 보증업무는 애초에 문제가 생긴 자리에서 시작되는 일이었으니, 그 기류가 곱기만 할 리 없었다. 비즈니스 영어로 쓰인 문장 속에서도 흐름과 단어 선택 하나에 미묘한 온도가 실려 있었다.
잘 처리해 봐야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 특별히 인정받을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결함’이라는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는 일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았다. 당연히 상대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그 기류는 읽혔고, 내 마음도 함께 흔들렸다.
내가 어렵게 정리해 보낸 논리를 상대가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으면, 문장을 차근차근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상대의 주장이 더 타당해 보일수록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그렇다고 그대로 수용할 수 없었다. 나는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때는 왜 그렇게 힘든지 몰랐지만, 제로섬 게임은 내게 맞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날 선 시간을 지나며, 나는 메일을 대하는 나만의 원칙을 세웠다. 마음이 거칠어진 상태에서는 답장을 쓰지 않는다는 것. 불편한 기분이 올라오면 회신 버튼을 누르지 않고 창을 닫았다.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메일은 닫혔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여러 문장이 오갔다. 따지고 싶은 말과 반박의 표현들이 뒤엉켜 맴돌았다.
그 문장들이 조금씩 힘을 잃고 조용해질 즈음, 다시 메일을 열었다. 그러면 같은 문장이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공격처럼 느껴졌던 표현이, 다시 보면 그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한 논리일 뿐인 경우도 많았다. 내가 지레 더 어둡게 읽어낸 부분도 적지 않았다.
설령 쉽게 반박하기 어려운 주장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가라앉고 나면 길은 보였다. 감정이 앞설 때는 막막했지만, 차분해지고 나면 작은 틈이 드러났다. 보강해야 할 근거와 물러설 수 있는 선이 그제야 정리되었다.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내가 쓰는 메일에서 불필요한 기운이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마음의 온도는 글에 남는다. 아무리 정중한 표현을 사용해도 문장 어딘가에 감정이 배어난다. 그리고 섣부른 감정은 대개 실수로 이어진다.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될 문장 하나, 굳이 세우지 않아도 될 자존심 하나가 글 사이에 끼어든다.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 때 잠시 멈추는 일.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의식적으로 멈추고, 스스로의 평정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반복하다 보니 그것은 습관이 되었다. 속이 달아오를 때 바로 반응하지 않는 습관. 내 마음을 먼저 살핀 뒤에야 문장을 내보내는 습관.
돌이켜보면 그것은 업무 기술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한 방식이었다. 이메일은 오고 갔고, 반박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잠시 식히는 시간 덕분에 나는 그 일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지 않을 자리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나는 그곳에 오래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