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의 무게
지민이는 태어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서울아산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끝났고, 이제는 회복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결코 가볍지 않았다. 소아병동의 새벽은 모든 움직임이 조심스러웠다.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우리 부부는 병원 생활을 거의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거대한 병원 건물,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 바삐 오가는 의료진의 발걸음.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그 낯섦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온 정신은 아이에게 가 있었다. 수술 부위가 잘 아물고 있는지, 체온은 괜찮은지, 작은 표정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하루를 버텼다.
초음파 검사를 통해 아이의 증상을 알게 된 후, 아내는 아이에 대한 걱정을 멈추지 않았다. 출산 이후에는 그 걱정이 아이를 돌보는 손길로 옮겨갔다. 자기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아이 곁을 지켰다. 혹시라도 잘못될까 작은 증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내는 지쳐 있었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온전히 아이만 챙기면서도 자신을 지탱하는 힘, 그것이 ‘엄마의 초능력’이었다.
나에게는 피할 수 없는 병원 밖의 일상이 남아 있었다. 주중에는 울산에서 일을 하고 금요일 밤이면 심야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새벽에 도착해 대기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아침이 되면 아내와 지민이를 만났다. 필요한 것을 챙겨 주고, 잠깐 자리를 대신 지키는 일. 그것이 그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전부였다.
6인실 병실에는 각자의 사연을 안은 아이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지민이 걱정뿐이었다. 우리 아이의 수술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병상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내가 붙들고 있던 걱정의 크기가 조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민이는 ‘퇴원’이 예정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그때까지는 그저 당연한 순서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어떤 아이에게는 그 말조차 쉽게 꺼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약속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특히 한 아이가 기억에 남는다. 다섯 살이나 여섯 살쯤 되었을까. 태어나는 과정에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영구적인 뇌 손상이 남았다고 했다. 그 아이의 시선은 초점 없이 천장을 향해 있었다. 가끔 기관지의 가래를 빼내는 기계 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웠다. 모두가 잠든 밤이면 그 소리는 더 크게 울렸다. 나라도 예민해질 법했는데,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아이의 부모는 교대로 병상을 지켰다. 오랜 병원 생활의 흔적이 그들의 얼굴에 남아 있었다. 힘들어하는 기색조차 줄어든, 처연한 표정. 그들의 삶을 가늠해 볼수록 우리가 겪는 시간은 다른 빛깔로 보였다. 내 아이의 아픔은 여전히 컸지만, 세상에는 또 다른 깊이가 존재했다.
병동 앞에는 조금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 건너편은 소아암병동이었다. 단 한 글자이지만, 쉽게 입에 올리기 어려운 무게를 지닌 말이었다. 어느 날 그 공간이 유난히 시끄러워 가보니,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모자를 눌러쓴 아이도 있었고, 휠체어에 앉은 아이도 있었다. 하나씩 차고 있는 링거 거치대는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병원이었지만, 누구도 그 아이들의 놀이를 말릴 수 없었다.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른들의 표정에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나에게도 여러 감정이 밀려왔다. 아이들은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미리 상상해 두었던 두려움이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작아졌다.
시간이 지나 지민이는 퇴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세상이 조금 달라 보였다. 그러나 병동에 남아 있을 아이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보던 아이의 눈동자, 밤마다 울리던 기계 소리, 링거를 달고도 웃던 아이들.
그 기억은 내 일상의 기준이 되었다.
아침에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 밥을 먹고, 울고 웃고, 투정을 부리고, 잠드는 일상. 너무 평범해서 가끔은 버거운 하루. 이런 날들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민이가 병원에 머물던 시간은 두려움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배운 시간이었다. 그 사실을 나는 그곳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