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보증업무를 하던 대리 시절의 일이다. 업무 특성상 처음 만나는 사람과 함께 출장을 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서로 통성명하기가 바쁘게 차에 올라, 한두 시간을 나란히 앉아 가야 했다.
그 시간은 아무래도 편한 시간은 아니었다. 서로 아는 것이 거의 없으니 무슨 말을 꺼낼지 몰랐고, 조용히 있자니 침묵이 더 어색했다. 몇 마디 말을 건네 보았다가 짧은 답이 돌아오면, 나는 금세 입을 다물었다. 라디오를 틀까 하다가도 혹시 싫어할까 싶어 손을 거두었다. 결국 ‘한두 시간이니까 참으면 된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운전에 집중하곤 했다.
그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출장이 있다. 그날도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길을 나섰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 보려고 몇 번 말을 건넸지만, 굳은 표정으로 짧은 답이 돌아왔다. 침묵은 더 단단해졌다. 어색한 공기 속에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해야 할 일은 무리 없이 끝났지만, 돌아오는 길이 오히려 더 부담스러웠다. 이미 충분한 침묵을 나눈 사이였기에, 다시 그 차 안에 올라타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돌아오는 길이 거의 끝나갈 무렵, 문득 궁금해졌다. 이분은 무엇을 좋아할까? 회사에서 맡은 직무 말고, 혹시 스스로를 위해 쓰는 시간이 있을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좋아하는 취미가 있으십니까.”
그 순간, 그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평소에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고, 별다른 약속 없이 회사와 집을 오가는 생활이라고 했다. 대신 여름휴가만큼은 오롯이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스쿠버 다이빙으로 유명한 나라를 찾아가, 1년 동안 모아 둔 시간을 바다에서 보내고 온다고 했다. 1년 내내 가족을 위해 지내는 만큼, 그 시간만큼은 가족들도 기꺼이 이해해 준다며 웃어 보였다.
바닷속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얼굴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물속에서 마주한 풍경과 장비 이야기를 풀어놓는 목소리는 점점 생기를 띠었다. 나는 이야기가 흥미롭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의 달라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장단을 맞추며 조용히 들었다. 내 반응이 싫지 않았는지, 그의 이야기는 좀처럼 끝날 줄을 몰랐다.
그의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나에게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고 했다. 취미를 묻기 전의 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식탁 위에서도 바다 이야기는 이어졌다. 나는 거의 듣는 사람이었지만, 그 시간은 충만했다.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무엇이 그를 그렇게 변화시켰는지, 그 이유를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 주는 건 특별한 말솜씨가 아니었다. 그저 상대가 소중히 여기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캐묻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길 기다린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는 기꺼이 듣는 사람이 된다. 그러면서 사람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가끔은 “딱히 취미가 없습니다.”라는 답을 듣기도 한다. 그럴 때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아쉬움도 있지만,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묘한 안타까움이다. 취미가 없다는 말이 꼭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믿는 행복의 요소 중 하나는 자신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고된 일상을 버티게 해 주는 관심 대상 하나쯤 마음속에 품고 사는 일. 나는 그것이 사람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요즘 누군가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달리기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달릴 때의 호흡과 마음의 변화에 대해, 저녁 달리기가 어떻게 하루를 정리해 주는지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상대가 고개를 끄덕여 준다면, 예전 바다를 이야기하던 그처럼 나 역시 신이 나서 말을 잇게 될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 출장길은 단순한 업무 일정이 아니었다. 침묵을 견디던 시간 속에서 나는 마음을 여는 한 가지 방식을 배웠다. 그 뒤로 나는 어색한 분위기에서도 질문을 찾는 여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