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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대하는 나만의 원칙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도 서너 번은 시도해 보는 거다.

by 이진호

나는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도 서너 번은 시도해 본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몇 번 먹어보고 그 맛을 알게 되면 계속 즐기는 거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나와 상관없는 음식으로 남겨 놓는 거다. 거창하게 이런 원칙씩이나 세우게 된 것은 평생 모를 뻔했던 홍어 맛을 알게 되고 나서다.


지금은 군침 도는 사진이지만... (출처 : 한식메뉴 외국어표기 길라잡이)


홍어는 나에게 정말 낯선 음식이었다. 부모님도 홍어를 모르는 지역 출신이신 터라,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는 홍어를 가깝게 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회식자리에서 처음 만난 홍어는 그 특유의 향기(?)만으로도 감히 손댈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래도 한 점 먹어보라는 일행들의 권유를 끝내 거절했는데 웬걸, 다들 내심 반기는 눈치였다. '얼마나 맛있길래...' 하는 오기 어린 호기심이 발동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억지로 자른 홍어 반 점을 입에 넣었다. 난생처음 홍어를 맛보는 순간이었다. 작은 조각이었지만 그 맛과 냄새는 충분히 강렬했다. 그것은 분명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뭔가 잘못된 부위를 먹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솔직히, 그것은 그냥 썩은 생선 같았다.) 하지만 그 홍어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오히려 덜 삭혔다는 불평을 받을 정도였지만, 나에게는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실 만큼 충분히 강했다.


그 강렬했던 첫인상이 잊힐만하면 다시 접할 기회가 생겼다. 물론 일부러 찾은 건 아니었다. 주변에 홍어 마니아가 드물지 않았고, 전라도 출신의 경조사에는 홍어가 빠질 수 없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은 홍어를 서로 아껴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억울했다. 홍어를 먹는 즐거움에서 나만 소외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마음에 매번 '이번엔 좀 다를까' 하며 도전해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홍어가 먹고 싶었다. 음식 같지도 않던 것을 먹고 싶어 하다니, 어디가 이상해진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묘한 느낌이었다. 그동안 억지로 한 점씩 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홍어 맛에 중독되었던 거였다. 결국 홍어 전문점을 내 발로 찾아갔고, 그날 이후 홍어는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되었다.


이 계기로 남들이 그렇게 즐기는 음식이라면 최소한 몇 번은 도전해 보고 결정해야겠다는 원칙을 세우게 되었다. 남들이 누리는 즐거움을 놓치기 싫어서다. 다양한 행복의 원천을 난이도에 따라 구분하기는 어렵겠지만,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느끼는 행복은 상대적으로 쉽다고 할 수 있다. 구하기 힘들거나 고가의 음식이 아니라면, 그냥 그 음식을 찾아 먹으면 되니까 말이다. 일생 동안 누리는 행복을 수치화한다면 음식으로 인한 행복도 일정 비율을 차지할 텐데, 쉽게 포기한 낯선 음식으로 인해 전체 행복이 줄어든다면 아쉬운 일이다.


fischbrotchen-3313364_1920.jpg 홍어 못지않은 Haring, 생각보다 먹을만했었던 음식


음식에 대한 나의 원칙을 늘어놓는 이유는 다른 행복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으면 되듯이, 행복해지고 싶으면 행복해지는 활동을 하면 된다. 또 어느 식당을 가야 할지 모를 때 소문난 맛집을 찾아가듯이,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잘 모르겠다면 다른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활동을 따라 해 보면 된다. 그러고 행복하다면 계속하면 되는 거고, 아니면 접으면 된다. 간단한 원리지만 실천은 다른 얘기다.


경계해야 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잘 모르겠다고 아무 활동도 하지 않는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하다. 어떤 활동을 접할 때 나와는 맞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지레 멀리하거나 포기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을 누릴 기회가 사라진다. 한 평생 누릴 수 있는 행복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굴도 그런 음식이었다. 처음 한두 번 먹을 때는 그 찝찔한 뒷맛에 젓가락을 피했다. 아무래도 굴은 내 입맛이 아니라는 결론이 굳어질 무렵, 우연히 차원이 다른 굴을 먹어 볼 수 있었다. 식당 주인 말로는 그 날 아침에 따 온 거라 했다. 그런 싱싱한 굴을 먹어보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알만했다. 이제는 그보다 덜 맛있는 굴이라도 잘 먹는다. 몇 번 먹어보고 포기했더라면 누리지 못했을 굴로 인한 즐거움이다.


그렇다 해서 모든 음식을 다 즐기게 된 것은 아니다. 고래고기는 벌써 여러 번 먹어봤지만, 아직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고급 고래고기도 먹어 봐도 내키지 않는 걸 보면 고기의 질이 문제는 아닌 거 같다. 누군가 그랬다. 고래고기 맛을 알게 되면 인생이 슬퍼진다고. 먹고 싶을 때 쉽게 못 먹어서라나. 앞으로 고래고기를 몇 번 더 먹을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고래고기 때문에 슬플 일은 없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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