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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이응 Aug 03. 2020

달력이 여름을 말하기 시작할 때

그동안 배운 걸 잊기

달력이 여름을 말하기 시작할 때쯤, 동해 한 달 살기를 검색했다. 그게 6월 중순 무렵이다. 

떠나고 싶었다. 떠나야만 했다. 몸과 마음이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9살 , 7살 입과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두 아들과 24시간 함께 지냈다. 한 달이면 괜찮다고 매일 음식을 해대며, 긴 겨울 방학을 즐기려 노력했다. 두 달이 지나고 늦은 개학이 시작됐다. 그래, 두 달도 잘 지냈는데 세 달이라고 뭐 달라지겠는가. 그러나 달라지기 시작했다.  


책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나의 일은 중단됐고, 지친 육아와 감정노동 달래느라 밤마다 마신 다양한 주종들 덕분에 역대 최고의 몸무게를 가지게 됐다. 갑자기 확 살이 찌고, 온몸이 무거워지고, 무기력해져 갔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서다. 하루 종일 같은 사람만 봐서 그렇다. 하루 종일 같은 배경만 봐서 그렇다. 

하루 종일 밥하고 청소하는 사람으로만 살아서 그렇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슐레밀처럼 요술 장화를 신고 마구 돌아다니고 싶었다. 마스크를 끼더라도.  종일 돌아다녀서 샤워하고 나오면 사르륵 기분 좋게 노곤해지며 잠들고 싶었다. 이러나저러나 두 아이와 함께 할 수밖에 없기에, 큰 아이 2주 여름방학 만이라도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이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어쩌면 아이들 덕분이다. 아이들 때문에 집에 묶여 있었지만, 아이들 덕분에 이 여행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런 순간이 많아지고 있다.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 덕분이라고...



나는 학교에서 나온다 재빨리 
그리고 정원들을 지나 숲으로 간다,
그리고 그동안 배운 걸 잊는 데 여름을 다 보낸다

2 곱하기 2, 근면 등등,
겸손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법,
성공하는 법 등등,
기계와 기름과 플라스틱과 돈 등등, 


달력이 여름을 말하기 시작할 때,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중에서 






그렇다.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당신 때문에.. 너 때문에... 이런 '탓'을 여행 동안 잊을 것이다. 

더불어 살기 편하지만 생기 없던 집의 생활을 잊을 것이다.

정치와 뉴스를 잊을 것이고, 잠시 강박적이었던 독서를 잊을 것이다.

다소 성급하고 욕심스러운 글을 잊을 것이다. 

동해바다에서 보름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고 누워 

이 집이 참으로 낯설다고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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