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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이응 Aug 07. 2020

빛이 들어올 시공간,   여행

남편과 거리두기


일단 이 글은 남편을 옆에 두고 쓴다.


동해바다 보름살기동안 남편은 시작과 끝 2~3일 정도만 함께 지내기로 했다.남편은 10년 모범 운전자인 내가 고속도로 장거리 운전하는 걸 늘 못미더워한다. (심지어 지금 타는 차도 내가 산 차인데 말이지.) 나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최대 장거리 운전한 곳은 대부도나 춘천정도.. 몇 년 전 제주도에 3주 살 때도 남편 없이 안전하게 다녔다. 사람 많은 곳도 싫고, 아침 일찍 움직이는 것도 싫고, 모자란 잠을 주말에 몰아 자야 몸이 회복한다고 믿는 남편은 휴일에 내리 잠만 잔다. 두 아들을 매일 집에서만 놀릴 수 없기에 자는 아빠를 두고 셋이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완전체 가족 나들이를 꿈꾸며 목적지 선정, 가는 경로, 시간, 식사할 곳, 경비등을 모조리 준비해도 투덜이 남편은 한 번도 만족하지 못했다. 나보다 더 늦게 걷는 사람이고, 나보다 더 생각이 많고, 계획적인 사람이라 나의 계획과 준비는 그에게 성급하고, 즉흥적이고, 어설픈 것이 되어버린다. 10년 넘게 살면서 그와 만족스러운 여행이 있었던가. 없었다. 매 해 그 비싼 돈을 들여 여행을 갔지만 좋았던 적은 없었다. 여행 중간 싸우기는 흔하고, 혼자 먼저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물론 이 말은 이번 여행에도 단 이틀만에 어젯밤 남편입에서 나왔다.(하지만 지금 아아를 마시며 옆에서 일하는 중이다)




"난 애들 동반 입대 시키고 세계여행 갈거야."

"난 그때 은퇴했을려나..."

"여보, 나. 혼.자. 갈거야. "

"나는?"

"집 월세로 돌려놓고 짐은 컨테이너에 맡기고 갈테니깐 오빠는 양가 어르신 집에서 살고 있어."

"......"







'그와 여행을 함께 하지 않음이 더 낫겠다'고 느낀 게 아마도 괌여행이었을 것이다. 결혼하고 아이둘을 데리고 처음 해외로 떠났던 여름 여행. 둘째가 막 돌 지나 그 더운 가운데 아기띠를 매고 다녀야했다. 두 아이와 땀을 찔찔 흘리며 다니기도 버거운데, 남편은 덥다고 짜증, 음식이 맛 없다고 투덜, 오로지 쇼핑할 때만 가장 행복해보였다. 

이 남자는 참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여행하는 동안에도 그 걱정은 줄지 않고 배가 된다. 괌에서 스카이 다이빙할 체험을 여행 전 몰래 결제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그가 말릴게 분명했다. 괌에 가서야 스카이다이빙을 하겠노라 하니 아니나 다를까 첫마디가 "미쳤다. 죽으면 어쩌려고!!! 취소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올께. 제일 낮은 높이로 신청했어. 환불도 이제 안돼." 그러고 난 가장 최고 높이에서 뛰어내렸다.!!!!! 내가 비행기에서 마지막으로 뛰어내린 사람이라는걸 아직도 모른다. 

걱정이 많아 늘 부정적이다. 이러다 큰일 나면 어떡해. 이렇게 줄까지 서서 먹어도 맛있는지 모르겠더라. 애들 놀다가 다치면 어떡해... 여기 벌레가 넘 많아...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그의 앞에서 난 매번 낙담하고 말았다.  

제주도 여행 중 맛있다는 가정식 만두전골집에 가서 몇만원하는 음식을 먹었다. 정갈하고 담백한 만두 맛이 좋아 연신 맛있다를 말하고 있는 내내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먹는 남편. 

" 오빠 어때? 맛있지 않아?"

".....뭐...그냥....맛있네...난 그냥 집에서 먹는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더라."

단 한번도 여기 맛있다! 여기 멋지다! 여기 진짜 좋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 기뻐하고 신나해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군다. 부부상담했을 때 상담사의 "자신의 감정을 어떠한지 말해줄 수 있을까요?" "전...그냥..괜찮아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는 거듭된 질문에도 매번 같은 답을 하는 사람. 십년동안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에 "아무거나.."라고 답하는 사람. 


자신은 부정적인 사람인데 내가 긍정적이라서 좋았다는 그가 처음에는 뭔가 안쓰럽고, 그를 더 웃게 만들고 싶었다. 그저 행복한 순간이라고는 회사에서 인정 받을 때라고 답하던 그를 난 왜그리 안아주고 싶었던지...

하지만 그의 어두운 색을 내 하얀색으로 덮을 수 없었다. 어둠은 내게도 있었고, 오히려 그를 만나 까만 영역은 더 넓어졌다. 나 또한 밝은색을 스스로 채워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와 나의 어둠이 날로 커져갔고, 우리 사이에 빛이 들어올 공간이 필요했다. 



처음으로 결혼 후, 혼자 1박 2일 제주도 여행하는 동안 진정한 '여행의 맛'을 느꼈다. 누군가를 깨울 필요도 없고, 상대방의 감정과 컨디션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1박 2일이 4박 5일 일정만큼 길고 충만하게 느껴졌다. 민첩하게 이동하고, 사유의 순간은 넘쳤다. 낯선 여행자들과 밤새 떠들어댄 인생의 조각들은 맛있고, 영양가가 넘쳤다. 목적지가 겹칠 때만 동행하고 쿨하게 헤어졌다. 여행하는 동안 남편과 나는 단 한차례의 통화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내가 서로 잘 지내고 있으리라는 '신뢰의 연락두절'. 그는 내가 홀로 떠난다고 했을 때 걱정을 접었다. 그 때부터였다.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어둠 사이에 빛이 들어올 시공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그 이후, 아이들과 나는 제주도에 1주 때론 3주 남편없이 여행했다. 남편 없이 여행 할때마다 "아빠는 같이 안오고?"라는 소리를 듣거나, 아이들이 가끔 내 한계의 선을 넘을 때 울기도 했지만, 여행의 맛은 늘 '생생하게' 즐겼다. 22개월 차이, 두 아들은 재미나게 놀았고, 가끔 젤리 사주고. 매일 놀 시간을 허락만 해주면 되었다. 아빠는 찾지 않았다. 나도 늘 남편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니 자유롭고 편했다. 진짜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한 공간에 들어간 게들은 서로를 밟고 다닌다. 



이번 보름동안 지낼 가장 저렴한 숙소를 잡았다. 엘레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 벌레가 계속 들어오는 집이다. 집에서 지내듯 집안 살림을 해야한다. 빨래를 널던 남편은 "이게 무슨 여행이야. 고생이지"라고 말했다. 자신은 좋은 호텔에서 2박 3일 깔끔하게 쉬고 오는게 제일 좋다고 한다.  (지금 숙소는 15일동안 호텔방 하루 값이다.)


여행의 개념과 스타일이 다른 두 사람이 가족여행이라는 의무로 계속 여행을 해야할까?



나와는 맞지 않아도 아이들과는 괜찮을수도 있기에 내 최선의 선택은 그와의 여행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가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그에게 맞춰주려한다.그럴려면 나의 여행은 길어야한다. 

그가 가고도 즐길 수 있는 여행의 시간이 필요하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과 잠시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거리를 두게 됐다.

물리적거리 만큼은 아니지만 정서적 적당한 거리감은 잔잔한 그리움을 동반한다.

그를 상상해본다. 지금은 침대에 누워서 티비보고 있을까. 

오늘 점심은 뭐 먹었을까나. 집안 혼자 있는 그를 그려본다. 

어느새 남편은 그가 되어 상상 속 인물이 되어간다. 

지금 그는 내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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