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다짐
오늘 문득 고등학교때 자주 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하기 싫도 하는데, 하고 싶은 일도 해야겠다는 내 나름의 발악. 지금은 내가 유별나게 공부하기 싫어했던 기억이 없는데 그 말만 보면 내가 어지간히 공부를 싫어했던가 싶다. 학교에서 짧은 쉬는 시간엔 수업 보상이라도 챙겨 받듯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물론 가까운 친구들과 매점도 가고, 복도에서 수다도 떨고, 화장실도 가고. 책을 읽었기에 안전했던 시기인가 싶기도한데, 지금 말하고 있는것처럼 '하기 싫은 일'의 반대편에 있던 '하고 싶은 일'은 응당 책읽기였다.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그게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지금 그때처럼 틈만 나면 읽는 성질이 없어진 나를 보면 의심할만하다.
그로부터 계속 읽는 사람이었더라면. 나는 지금 조금 함량 높은 사서가 될 수 있었을까. 사서가 되는데 책읽기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서가 되려는 결심을 세우는 데까지만 도움이 되었다. 사서가 된 후로 항상 불안했다. 이렇게 정년을 맞는다고? 사서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일을 위한 일들만, 그것도 매년 반복적으로 하는데 이대로 늙어서 집에 가야한다고?
며칠전에 내가 관리자가 되면 내가 있는 도서관에 근무하는 실무사서들은 '읽는 것이 업무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던 다짐은 그런 불안에서 시작됐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량미달이라는 괴로움을 지고 살고 있는데 나처럼 괴롭지 않더라도 '읽는 것이 업무가 되는 경험'을 한 사서가 느낄 충만함을 상상한다.
그런데 읽는 게 쉽지 않다. 내일 있을 독서모임을 위해 <작은 것들의 신>을 읽었다. 겨우. 대략적인 서사는 이해했다. 이 독서모임의 주제가 '이방인'인 것에 중심을 두고 생각을 하면 조금 더 감이 온다. 그렇게 생각하니 주제를 중심으로 책을 선정하는 거, 괜찮네? 그렇지 않았다면 헤매기는 커녕, 길 잃은 아이처럼 길 잃은 그 자리에 서서 360도 살피며 가야할 방향을 전혀 찾지 못하는 내가 그려진다. 누군가 나를 찾아와줘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아무튼 책이 잘 읽히지 않았고, 겨우 읽었기 때문에 내일 모임이 불안해야 마땅한데 1년의 독서모임 경험으로 아, 이 모임은 꼭 나가야해! 하는 느낌이 오는 경우다. 내 이해가 충분하다 여겨졌다면 나가서 뭐하랴.
한편, 내일 저녁에는 청소년 독서토론 논제 워크숍이 있는데 어후, 그건 그냥 패스하기로 했다. 문학이 아닌 책의 논제 작성에 대한 감이 전혀 없어서 손도 못댔다. 안댔나. 아무튼 워크숍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혼자 만들어보기로 했다. 워크숍은 앞으로도 빠지는 걸로. 휴직하고 내가 일을 너무 많이 벌이는가 싶어서 자중하고 일단 읽는데 집중해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겠다.
오래된 다짐을 생각하니 스펙타클하지는 않았지만 소소하게 재미있고 유쾌했고 또 따뜻했던 그시절의 온기가 느껴진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그것이 맞느냐고 지금의 나에게 묻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예스!예스!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