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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마중

웬만하면 모든 것을 중지하는 시간

by 기나

오늘은 오후 늦게 오일시장에 다녀왔는데 주차하고 엘베 앞에 서니 엘베가 7층에 멈춰있다. 이 시간에 7층? 어머니가 오셨을까 하며 순간 내 눈이 번쩍이는 게 느껴졌다. 세뱃돈 받은 현금 넉넉히 들고 가서 이것저것 장을 잔뜩 보고 왔는데 어머니는 뭘 만들어주시려고 오셨을까 기대하는데 아들 전화가 걸려왔고, 엘베 안이라 끊겼다. 어머니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7층에 도착해 보니 우리 수형이 자전거가 들어와 있는 걸 보고 재빠르게 모드 변경. 이렇게 일찍 들어오다니, 무슨 일이 있나?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는 기척이 들리면 하고 있는 모든 일을 중지하고 현관으로 달려 나간다. 아이를 키우면서 언제부턴가 그러고 싶어졌다. 나는 왜 그러고 싶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나 자라는 동안 많은 날들을 빈집에 들어와 '학교 다녀왔습니다' 인사하던 이미지가 떠올랐다. 거기에 불만을 가졌던 것도 아닌데 그런 장면이 떠오른 걸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쉬웠던가보다 생각했다. 종일 밖에서 지낸 아이들을 환영해주고 싶고, 에미를 보자마자 시작되는 종알종알을 기꺼이 듣고 싶다. 나도 얼른 있던 자리로 가서 하던 일을 해버려야 하므로 아주 잠깐이지만 내 나름 중요한 의식이다. 아이들에게 그게 어떨지는 모른다. 아무 생각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나쁘지는 않겠지.


그런데 얼마 전에 아이들도 에미만의 의식을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이 있었다. 남편과 다퉜는데 이따금 남편과 아이들이 한편이고 나만 그들의 적인 느낌에 말할 수 없이 외로워질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는데, 외로움을 감추느라 소통을 거부했고 (자연히 더 외로워진다.)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는데도 모른 척했다. 매번 달려 나가 환하게 웃는 거, 잘 지냈냐고 묻는 것 모두 나만 아는 내 의식이니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동이가 물었다. "엄마 오늘은 왜 안 나왔어?" 내가 뭐랬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길로 나는 마음이 풀려버렸다. 외로움이 부리나케 달아났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 어쩌면 딱 이 장면을 기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들 에미는 아침밥도 제대로 안 주고, 저들 좋아하는 걸 매일 만들어주지도 않고, 만들어주는 음식도 아이들 입맛 수준이 아니고, 집안이 저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도 않고, 딱히 기억할만한 사랑의 표징 같은 것이 없을 것 같은 거다. 헐크를 방불케 하는 괴성과 괴력의 상징은 나라는 에미가 아이들한테 주는 이런 방식의 사랑이 적어도 지동이한테는 통한 것 같다. 수형이는, 너는 어떠니?


오늘 집에 왔는데 일도 하지 않는(휴직 중) 엄마가 어딜 갔을까 궁금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먼저 들어온 걸 보고 어쩌다 한 번이지만 집에서 반겨주지 못한 아쉬움에 쓴다. 일하는 동안은 허구한 날 팽개쳐놓고 되게 악착같이 애들 하교 마중해 준 것처럼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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