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마다 도서관
주 5회 가던 도서관에, 요즘은 주 1회 간다. 아니다. 주 3회 가는가 보다. 도서관에서 머무르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우리 동네 도서관은 낯설어도 너무 낯설고, 불편해도 너무 불편한 곳이 되어 버려서 거기는 자수모임 있을 때만 가고 매번 주변 도서관만 들락거리고 있다. 지은 죄 없이 왜 불편할까 생각하다 내가 정말 지은 죄가 없는 게 맞는지 다시 묻는다. 요즘은 계속 이런 식의 물음표를 품고 사는 것 같다. '정말 그게 맞아?' 맞으면 다음 질문을 생각하는 것이 맞지만, 맞지 않다면 질문을 바꿔야겠지.
지은 죄가 없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못할 것 같다. 동료들과 잘 지내지 못했다. 좋고 싫음, 옳고 그림에 대한 표현이 분명한 게 죄다. 최근에 같이 일한 동료, 나보다 열 살은 어린 그가 나더러 투명하다고 평했다.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지만 나라는 사람의 특징 가운데 하나를 정확하게 짚은 것 같다. 투명한 게 죄다. 투명해서 불편함도 여과 없이 드러났고, 어떤 동료들은 그게 불편했을 거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근무하는 사람들이 불편해서 죗값을 치르는 중이다. 저들은 바빠 죽겠는데 한가하게 도서관 들락거리는 휴직자 스탠스가 걸리적거릴 수도 있다는 쓸데없는 걱정도 해보며. 큼큼.
도서관 직원들끼리는 도서관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이용자'라고 부른다. 그냥 '시민'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렇게 된다. '시민'은 맞는 말일까 또 생각하면, 내가 입사했을 때부터 줄곧 사용하던 '지역주민'이라는 말이 사실 더 맞다. 최근 언젠가부터 작성하는 문서마다 일부러 '시민'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우리 지역주민이 모두 시민이었으면 좋겠어서, 그러길 바라기 때문이다. 시민이 누구냐고? 사전은 찾아보지 않았지만 나는 더불어 산다는 의식을 갖춘 사람, 나 자신의 행동이 반드시 누군가 또는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일개 행정구역에 소속되어 있는 것 이상이며,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추구할 자유가 있는 동시에 타인의 이익과 편의를 해치지 않을 권리도 있다. '타인의 이익과 편의를 해치지 않을 권리'. 의무라고 하지 않고 권리라고 하는 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가지는 특권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콧방귀 뀌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나는 그 권리를 추구해서 행복하고, 그렇게 해서 평화를 느끼는 데 어쩔 거.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1인 소파에 낮은 테이블을 하나씩 짝지어 두었더니 주변에 사람들이 오가고, 머무르는 데도 불구하고 발을 올리고 있고, 칫솔질을 하면서 걸어 다니고, 다른 사람이 오면 불을 켜려고 했다면 자기 방처럼 불을 끄고 공간을 쓰고, 이례적이지만 이어폰 없이 음악을 듣고, 신문을 보고 나면 그 신문이 세워져 있어야 할 자리에 두지 않고 자기 편한 대로 아무 데나 눕혀 놓고, 한 사람이 그러면 뒷사람은 자연히 따라 하고,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높이 조절 열람대에 굳이, 다른 자리도 많은데 굳이 거기 차지하고 앉고.... 그래서 괜찮으세요? 그래도 괜찮으신 거예요? 무수히 물었다. 물론 마음속으로.
주마다 도서관에 가면 정말 끔찍이도 복귀하기 싫다. 혼자만 잘살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에 온다. 열에 한두 명이 그러면 사실 여덟아홉 명은 보통 이상인 데다, 어떤 사람들은 도서관 수준을 높인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데 다음 기회에 그런 이야기도 해야겠다. 아무튼 나는야 이용자들한테도 투명한 자, 정말 피곤하게 사는 자다.